한국일보

어떤 마지막 인내

2012-12-0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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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희 중앙결혼 워싱턴창작문학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항상 즐거움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만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공정함만이 존재 하는 것도 아니고 불공정만이 판을 치는 세상은 더더욱 아니다. 또한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운명에만 매달리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갖지는 않다. 그것이 절대운명 이라면 어찌 할 수 없겠으나 상대적 운명 이라면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꾸어가며 살아 갈 수가 있지 않을까?
절대운명이란 신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절대 불변의 운명으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운명이요, 상대 운명이란 인간의 결단과 노력으로 제어해 나갈 수 있는 운명을 말한다. 우리들의 운명이란 대부분 후자를 얘기 하는듯하다. 결단과 노력, 즉 인내를 하면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운명을 상대운명이라 한다.
성경의 바울 사도에 의하면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희망을 낳는다”라고 갈파한 기록이 있다. 결국 인내 하지 못하는 자 에게는 앞날이 보이지 않고 희망이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삼십 년을 넘게 사귀어온 같은 전문 분야의 친구 한 사람의 마지막 인내를 보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이곳으로 이주를 한 가정으로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가정이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남편에 대한 고민 하나가 있었다.
남편이 사업을 한답시고 이틀이 멀다 하고 새벽 한 두시가 되어서 집에 돌아 와서는 잠을 자고 있는 자기를 꼭 깨워서 해장국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도 아닌 두 세 명의 친구와 같이 들어와 큰 소리를 지르며, 그야말로 왕 노릇을 하는 것이었단다. 조금만 자기의 눈치가 다르면 같이 온 친구들 앞에서 별의별 쌍소리를 해가며 오직 자기중심적 생활을 계속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으나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경솔한 행동을 할 수가 없어 이를 악물고 살아오다가 아이들 둘을 다 결혼을 시키고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몇 달이 지난 후 연락이 되었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금은 아주 마음 편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끝까지 참아 보려고 노력 했지만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견디기 힘든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 같아 독한 마음먹고 결심을 했다는 변명(?)이었다. 한계상황에서의 상대적 운명에 대한 도전 이었을까?
운명이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고 키케로가 말했던가? 운명은(상대적 운명) 우리 인간의 의지 즉 인내심만 있으면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노력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는 자만이 가져볼 수 있는 승리의 행복감, 이 행복을 가진 자라야 진정한 강자가 할 수 있다.
인내의 뿌리는 혹독하리 만큼 쓰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열매는 한없이 달다고 한다. 끝이 없는 인내로 열매의 맛을 보는 것이 우리 생활의 목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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