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2012-12-04 (화) 12:00:00
내 옆방의 아저씨, 실직했다고 며칠 전 아줌니랑 대판 쌈을 벌이더니, 아줌니는 보따리 싸들고 집을 나갔는데, 어디서 성능 좋은 녹음기 하나 장만해 와서는 아침부터 간드러진 유행가 가락이 번지더니. 글쎄, 그 아저씨와 나는 대낮에도 구들장을 등에 지고 번듯이 드러누워서, 내가 벽을 쿵쿵 두드리자 그 아저씨 한물간 목소리로 “총각 왜 시끄러워서 그랴” “아뉴 볼륨좀 높여 달라구유” 어쩌구 악을 쓰며 신이 났는데…… 그 가락에 맞춰 담뱃재를 털고, 엄니의 병환과 삭월세 걱정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라면상자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보니 어헤라 열 개도 더 남았구나 신명이 나서 발장단도 쳐보고……
그런데, 차암내 그게 아니었던 모양여. 유행가를 따라 부르던 아저씨의 질펀한 노래가 코맹맹이 소리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뚝 그치고 말았거든? 뭔 일인가 기웃거려봤더니 글쎄, 녹음기 혼자 뽕자르작거리고 아저씬 눈이 벌개서 천장만 쳐다보고 있더라닝께. 그럼 녹음기 소리에 맞춰 ‘에헤라’ 어쩌구 하며 발장단이나 치고 앉았던, 나는, 이 푼수 같은 놈은 그럼 뭐하는 놈인겨. 갑자기 또 두 눈이 썸먹해지더라닝께.
윤중호(1956년 - 2004) ‘본동일기-다섯’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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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시인이 48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뜨며 남긴 시에는 가난한 우리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내가 도망 가버린 옆방 아저씨의 유행가 가락에 발장단을 맞춰줄 줄 알았던 위 시의 화자처럼 윤 시인도 인정이 많아 술과 사람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를 그리워하는 추억담과 추모시가 무성하다. 윤 시인이 시를 통해 발장단을 맞춰준 것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서럽고 외로운 바로 우리들의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