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 들판에 서서

2012-12-0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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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호 시인, MD

여름 내내
사람들 발자국 저리던 논밭
만삭되어 돌아 왔습니다.
노동에 닳아 속이 텅 빈
농부의 가뿐 숨소리는
건드려도 넘어질 듯합니다.
찬 서리에 오그라드는
갈대 잎 바짝 마른 여유가
온 들판을 누렇게 덮어갑니다.
솔솔 바람에 배불러져
일손 모자라 눈 맞추는 한낮
바쁘게 돌며 한참 웃는
일렁이던 가을. 어느새
얼굴색 환하게 물들며 수줍어
찬 기운 달빛 쓸어 담아
앞가슴 여미어 갑니다.
올해는 풍년들라고
하늘에 세 번 빌고
순한 햇볕으로 들판을 비질한
시원한 바람이
허수아비 머리에 올라
장단 치며 놀고 있습니다.
누런 황금벌판 위를
살포시 걷는 가뿐 걸음
참새 등위를 살짝 스치며
당신께로 다가갑니다.
여유롭게 다가오는
풍년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한 해의 기 인 삶 속에서
얼룩진 고달픔을 닦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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