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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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허상

2012-11-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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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마당

▶ 나정길 / 수필가

허리케인으로 전기가 끊겼을 때였다. 뉴스가 궁금하여 텔레비전나 컴퓨터를 보려 해도 켤 수 없다. 음악이 듣고 싶어도 오디오도 틀 수 없다. 냉장고의 음식은 썩어서 버리고 전기밥솥은 쓸 수 없어 옛날에 쓰던 압력솥을 꺼내 쓰니 밥 짓기가 더디다. 추워도 전기장판을 쓸수 없고 그밖에도 청소기, 전기오븐, 세탁기 등 문명의 이기가 모두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생활의 편리만을 좇아 문명의 발달이라 착각하며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은 도외시하고 물질이 주는 단기적 만족이라는 허상을 좇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세상은 더 많은 물질을 가진 부류와 물질이 부족한 사람들로 구분되어져 버렸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도덕적 가치는 귀찮아졌고 범법 행위도 마다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못 가진 자들은 있는 자들을 미워하고 사회제도를 원망하며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만족을 취하려한다. 물질만능의 세상은 삶을 더 욱 어둡고 혼란으로 빠뜨릴지도 모 른다.


길거리에 나서니 자동차와 발전기에 필요한 연로를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개솔린이 없으면 자동차도 무용지물인가. 현대문명은 지나치게 에너지 의존이 되어 버렸다. 지나친 연료사용은 기후변화를 자초했고 지구온난화는 열대성 저기압을 더욱 크고 맹렬하게 만들어 우리 인간들에게 경고를 주는 것은 아닐까.

밤이 되니 칠흑 같은 어둠이 온 마을을 뒤덮고 전지를 쓰는 손전등만 우리의 눈이 되었다. 중앙난방기도 전기로 점화되질 않아 방안은 냉장고처럼 춥다. 다행히도 보일러의 온수가 나와 뜨거운 물을 담은 고무팩을 이불 밑에 넣고 발을 녹이고 따뜻한 남쪽나라의 꿈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 전기 없는 생활이 일주일이나 지속 되었다.

복구 작업에 늑장인 사람들 원망도 해보고 큰 재난으로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성서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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