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이 지난 9일 개봉됐다. ‘링컨’은 무거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데다 주연인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뛰어난 연기에 힘입은 덕분인지 박스오피스에서 당초 기대를 뛰어넘는 선전을 하고 있다.
영화 ‘링컨’이 11월에 개봉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지난 19일은 링컨대통령이 그의 상징이 된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한 날이었다. 올해는 링컨이 이 기념비적 연설을 한지 149년이 되는 해. 스필버그 감독은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서 열린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이 연설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링컨은 1863년 남북전쟁의 최대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의 국립묘지 봉헌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이 행사의 주 연설자는 당대 최고 웅변가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이었다. 그는 2시간에 걸쳐 감동적인 사자후를 토해내며 1만5,000 청중들을 울렸다.
에버렛 연설 후 이어진 링컨의 연설은 이에 비해 너무 짧았다. 단 272개 단어로 이뤄진 2분 남짓 분량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에버렛의 사자후가 아니라 “여든 하고도 일곱 해 전”(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으로 시작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끝나는 링컨의 짧은 ‘발언’이다. 링컨은 이 연설을 통해 통합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더 할 수 없이 간결하게 요약해 냈다.
모든 전설에는 약간의 신화가 덧붙여지기 마련이다. 링컨의 게티즈버그연설도 예외는 아니다. 이 연설은 링컨이 게티즈버그로 가는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편지 봉투 위에 직접 쓴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링컨은 뛰어난 문장가였다. 하지만 그는 기차 안이 아니라 게티즈버그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이 연설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말할 때 빠짐없이 언급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도 링컨의 독창적 표현이 아니다. 이 문장은 노예폐지론자였던 시어도어 파커가 게티즈버그 연설보다 13년 앞선 1850년 발표한 글의 제목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링컨은 왜 연설의 시작을 단순히 “87년 전”이 아닌, “여든 하고도 일곱 해 전”이라는 말로 시작했을까. 이 표현에는 성경을 많이 읽던 당시 미국인들에게 좀 더 어필하려는 링컨의 계산이 숨어있다. 링컨의 표현은 시편 90편 10절에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로 번역되는 이 구절의 영어문장은 “The days of our years are threescore years and ten”이다. ‘score’는 20년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냥 87년 전이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운치 있게 들린다.
링컨의 연설은 아주 짧다. 그리고 신화가 덧입혀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티즈버그 연설이 지닌 생명력은 전혀 훼손되지 않고 있다. 게티즈버그 연설 기념식에 참석한 스필버그는 “링컨은 자신의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이 평등함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깨닫길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의 위대함은 그 길이에 있지 않다. 게티즈버그 연설이 살아있는 증거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외면한 채 대중을 유혹하기 위한 온갖 언설만이 난무하는 오늘 날의 정치판에 149년 전 링컨의 짧은 외침은 더욱 생생한 목소리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