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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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절

2012-11-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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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진 시인

싱그럽고 푸르던 산과 들판이 가을바람을 접하면서 붉게 단풍이 들고, 황금색으로 익은 과일에 단물이 고이고, 부드럽던 껍질들이 단단히 굳어 다음 세대를 이을 생명을 그 속에 갈무리한다.

어린 생명이 열매로 마무리되는 이때가 되면 하늘과 땅과 인간들이 다 같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천·지·인의 축제가 된다. 장성한 자녀들에게 짝을 지어주고, 옛 어른들의 산소를 찾아 시제를 드리며,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사실에 기쁨과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넘치는 계절이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추수 감사절을 맞아 칠면조를 굽고 호박파이를 나누며 가족 친지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한 해의 성장을 고마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당연지사이다.


추수 감사절의 연원은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항에 도착한 후 땀 흘려 지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 감사로부터 시작된다.

손에 칼을 든 혁명가는 자신이 당대에 공을 이루고 영화를 누려야 직성이 풀리지만 손에 쟁기를 잡은 농부는 뜻을 자신이 못다 펴면 후손들에게 바톤을 넘기며 죽을 때에도 종자를 베고 죽는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이러한 후예들이 신과 돈과 자유를 주창하면서 일구고 개척한 땅이 이곳이다. 하나님은 이 넓고 비옥한 대륙에 수백의 인종을 집결시켜 서로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경쟁과 대화 그리고 협동을 통해 아름다운 새 인간상의 완성을 위한 시험대로 이 땅을 마련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소수계라고 위축될 필요가 없고 영어가 부족하다고 뒤로 물러설 이유가 없다. 천지음양 동서남북 중앙에 귀한 인간이 설 수 있는 축복이 우리들에게도 보장되어 있다.

추수 감사절은 이 한 해를 정성껏 산 우리의 삶을 감사해서 창조주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축제의 날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일찍이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신라의 가배가 있어 추수의 감사를 드렸고 신라의 가배가 변모되어 중추월석(中秋月夕)이 오늘날의 추석이 된 것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 한 해를 되돌아보면 누구에게나 감사할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온 가족이 건강하게 한 해를 지낸 데 대한 감사, 귀한 자녀를 선물로 받은 데 대한 감사, 새로운 사업을 얻었거나 번창시킨 데 대한 감사 … 감사의 종류는 다양할 것이다.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할 조건이 더욱 많아지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영원에 비하면 부싯불 빛과 같고 무한에 견주면 이른 아침 풀잎의 이슬과 같은 인생이지만 피카소의 말과 같이 착하고 아름답게 살기에는 길다.

수고한 자가 얻는 열매, 창조주에게 드리는 감사, 이는 사랑을 받는 자와 사랑을 주는 자의 아름다운 화답이다.

우리 한인들은 자녀들을 이 땅에 심으면서 청교도들의 뜨거운 개척정신과 숭고한 신앙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신 앞에 바로 서는 경천애인의 후예요 귀생지도(貴生之道)의 고귀한 실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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