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년의 우정

2012-10-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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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문자 수필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정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가족의 사랑이 대표적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우정일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려서 만난 친구와의 우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그것을 참다운 우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른이 된 다음에 만난 사람과 우정을 쌓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사귄 사람이라고 해서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정이란 어느 때에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시절, 청춘이 무르익어가던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친구들은 대개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이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은 언제 만나도 허물이 없으며, 그 시절, 우리의 꽃 같은 시절로 우리의 감정을 되돌려 준다. 그 우정의 틀을 노년이 되어서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자랑할 만 한 일이다.


나는 노년이 되어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한국에 돌아가 친구들과 형제자매, 친지들을 불러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책을 낸 것을 기념한다기보다는, 나의 인생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함께 기념하고 음식도 나누는 자리였다. 왜냐하면 나의 책은 내가 주위의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왔던가 하는 이야기를 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대학 친구들과 초, 중고를 함께 다녔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많이 참석했다.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따뜻한 우정을 보여주던 친구들이다. 나는 그 기회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우정에 보답하고 싶어서 잔치를 벌인 셈인데, 되돌아보니 여전히 친구들에게 더욱 많은 빚을 지고 떠나왔다.

노년의 친구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친구들은 우리가 젊은 시절에 가지고 있던 마음을 고스란히 지니고 와서, 지금도 변함없는 우정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욱 그 우정이 빛을 발하고 있었나보다.

노년의 우정은 철없던 시절을 보내고, 마침내 무르익어 그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와도 같았다. 우리의 외모는 변하였으나 마음은 변함없이 푸르고 싱싱했다. 세월은 변하여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책을 낼 때에도 도와준 친구들의 마음이 표지에, 책갈피 사이사이에, 살아서 숨쉬고 있는 듯 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친구들을 보고, 사람의 마음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년의 우정은 청년시절의 우정보다 더욱 넉넉하고 아늑했다.

가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면서 남동생이 말했다. “여기에 오신 형님과 누님 중에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눈에 보입니다. 다른 출판기념회와는 달리,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은 이 책의 주인공이십니다. 오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그랬다. 책 속에는 같은 장소에서 함께 겪었던 이야기도 있고, 함께 했던 우리의 시간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나의 책을 읽고 즐겁고 행복했노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식사하면서 담소하였으니 행복했노라고 말한다.

나는 인생의 노을 속에서 노년의 친구들과 나누는 감회어린 우정을 한아름 가슴에 담아 태평양을 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이여 건강하시라고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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