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착각의 권리

2012-10-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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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마당

▶ 이예지 / 대학생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기억해냈다. 네 살 때쯤 이모가 트럭에 붕어빵을 가득 실어 오셨다. 한 트럭 가득 찬 뜨끈뜨끈한 붕어빵은 그 겨울 내게 너무도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나 언니는 이런 일이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내가 팥이라면 질색을 해서 이모가 붕어빵을 사온 적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니 내 기억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그 밤 내가 맡았던 붕어빵 냄새는 왜 이렇게 생생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것은 내 착각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난 참 많은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붕어빵을 좋아했다는 착각. 버클리를 졸업하면 절대 굶지는 않을 것이라는 착각. 내 친구들과 평생 갈 것이라는 착각. 뭐든지 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 그래서 나는 다르다는 착각. 나는 착하다는 착각. 남도 나를 착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착각.


지금 친구들과의 우정이 졸업 후에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믿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슬프게도 우리의 우정은 시들해져 버릴 수도 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습득한 지식과 사고력을 가지고 일자리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요즘 졸업 후 일을 찾지 못하는 선배들만 봐도 얼마나 큰 착각인지 알 수 있다. 또한 나는 특별할 때도 있지만 평범하고, 착할 때도 있지만 딱히 착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착각을 인지한다고 해서 착각하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객관적으로 보면 그 반대일 때가 많지만 나는 이 착각을 그만 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착각을 함으로써 나 자신과 내 삶에 더 만족하고, 더 큰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착각할 권리도 우리의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바닥나지 않는 한겨울의 붕어빵, 사실이든 아니든 그 얼마나 행복한 기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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