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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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이 좋다

2012-10-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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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 김영중 수필가

경주에서 제78차 국제펜대회가 열려 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한 주간을 경주에서 지내고 서울로 상경한 설렘과 기쁨, 흥분도 채 가시기 전에 몸에 예상치 못했던 탈이 생겼다.

멀쩡하던 새끼발가락에 염증이 생기며 심한 통증의 공격으로 나는 마치 패잔병처럼 쓰러졌다. 바이러스의 감염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주사로 약으로 치료를 했으나 전혀 차도가 없어 보행이 불편한 환자 노릇을 하다가 휠체어의 신세를 지며 귀가를 했다.

출국 전, 옛날에 어머니가 명약이라며 애용하시던 이명래 고약이 문득 생각이 났다. 공항 내 약국에 들러 “혹시 이명래 고약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잃었던 귀중품을 다시 찾은 듯한 기쁨으로 고약 두 박스를 샀다. 옛날 것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며 반가움이었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성난 발가락에 고약을 붙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피고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온 몸이 시원한 느낌이 들며 통증도 사라졌다. 어머니가 명약이라고 하시던 그 고약의 효험이었다. 고약 덕분에 이제는 회복기에 들어 살맛이 난다.

우리 집 딸들은 새로운 모델의 핸드폰을 몇 번씩 바꾸었다. 내 딸들뿐만 아니다. 모든 젊은이가 마찬가지다. 새로운 흐름에 합류해야 편하고 유익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대중사회에서 남과 다르다는 것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새 감각, 새 물결, 새 시대 … 끊임없이 새 것에 대한 강박증이자 광적인 욕구다. 젊은이들에게는 그 만큼 새롭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쉽게 새로운 것을 젊은 문화에 영합시키며 기성 문화를 버리고 있다.

내가 가진 핸드폰은 물론 집안 살림이나 가구 모두가 구식모델이고 고물들이다. 딸들은 박물관에 전시될 모델들이라며 갈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 손때가 묻어 있고 내 정성과 애환, 애착이 담겨있는 내 구닥다리들이 내 삶의 분신이기에 차마 버릴 수가 없다. 고풍의 향수를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새 것이 좋긴 하지만 새 것을 추구하다보면 안정감이 없다. 고풍스런 분위기 속에서 깊은 인생을 배우는 옛 것이 나는 좋다. 어머니 시대에 중히 여기던 이명래 고약이 좋고, 사람도 옛사람이 좋다. 오랜 세월동안 자기들이 구축해온 가풍, 텅 빈 옛집을 지키며 외롭게 사는 서구 노인들이 긍지가 있어 보여 좋다. 그 집에는 그들의 역사가 있고 보수적인 기품도 있으며 깊이와 무게가 있다.

내가 옛 것을 좋아하는 것은 옛 것에 대한 향수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가진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새 것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애착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행에 쫓겨 오래 갖고 있지 않으니 정들 새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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