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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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 해프 마라톤 후기

2012-10-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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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희 교사(언어기술아카데미(ALT) 교사)

일요일인 어제 센트럴팍에서 열린 해프마라톤에 참가했다. 평소 꾸준히 조깅을 해왔지만 21킬로미터를 한 번에 뛰기는 처음이어서 준비과정부터 상당히 긴장했었다.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며 마라톤 준비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평소보다 두 시간은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라톤 준비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연습 그 자체가 아니라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며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내 자신을 박차고 매일같이 새벽잠을 뿌리쳐야하는 것처럼 사소한 것이었음을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평생을 운동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던 나는 결혼 전에는 세상을 살면서 할 일도 많은데 뭐하려고 저렇게 숨까지 가빠하면서 뛰는 것일까 생각하며 뜀박질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에반이를 낳으면서 아줌마가 된 나는 깊게 잠들지 못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꼬박 1년은 아예 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아침 출근시간에 오징어처럼 사람들에게 돌돌 치여 매달려 서있으면서도 달콤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등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 더 한번 자볼까만 생각했다. 에반이가 돌이 지나면서 제법 잠자고 먹는 시간이 일정해지면서 체력이 많이 처지던 차에 밖에 나가서 슬슬 걸어 보기라도 할까 생각을 하던 중 에반이의 장애를 알게 됐다. 틈틈이 우울해하고 눈물 흘리며 장애아 엄마로서 발을 살며시 내딛는 법을 배워야 했기에 운동과 나는 도무지 박자가 맞지 않았다.


차츰 에반이의 장애가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믿겨지지 않은 억지 사실이 아닌 자연스러운 에반이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자 하던 어느 날 거울로 나를 우연히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니 머리를 아무렇게나 올려 묶고 어깨는 축 쳐져있던 아줌마 하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은 피곤에 절어있던 내 모습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에반이 때문에 내가 이렇게 돼버렸다는 소리내보지 않았던 원망을 뚜렷이 보게 된 바로 그것이었다. ‘에반이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초췌해보이지 않았을 텐데…’, ‘에반이가 장애가 없었다면 내가 좀 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에반이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하는 내 원망은 끝없이 강물에 그려지는 물수제비처럼 계속 퍼져나가고만 있었다.

그러한 원망이 깔려진 내 모습을 보면서 퍼뜩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에반이를 원망하고 있는 것인가? 남들에게 어쩌면 억지로 내 스스로에게도 나는 에반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이 원망의 물수제비를 보면 나는 여전히 에반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야하는 내 처지를 몹시도 가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렇게 내 모습을 한참동안 거울로 보면서 처참할 정도의 자기연민을 떨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반이가 장애가 있어도 에반이는 나의 아들이고 나는 그의 엄마다. 나는 나를 더 이상 불쌍해하지 말아야하겠다고 생각했고 장애가 있는 에반이를 키우면서 여느 엄마가 하듯이 엄마로 사는 모습을 즐거워하며 지내리라고 다짐했다.
아마 그 다음날 새벽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묵혀뒀던 운동화를 꺼내들고 아주 천천히 동네를 조금 뛰고 들어왔다. 문어발같이 근육하나 배기지 않았던 내 다리가 뻐근하면서도 가볍게 웃음이 나왔다. 그 이후로 눈이 일찍 떠지는 날에는 낡은 운동복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아침 가출(?)을 나간 것이 벌써 수 년 째다.

아침 가출이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나는 차츰 욕심이 생겼다. 이왕 뛰기 시작했으니 좀 더 나아가 에반이의 장애를 적극적으로 알려보는 쪽으로 돌려보면 어떨까하고. 한국 자폐아의 교과서처럼 되어버린 영화 ‘말아톤’에서 장애가 있는 초원이가 마라톤을 했다면 나는 장애가 있는 엄마로서 마라톤을 한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어제 달렸던 해프마라톤은 조만간 뛰게 될 풀마라톤을 목표로 하는 나의 작은 시작점인 셈이다.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은 수많은 부모가 소위 ‘정상이 아닌’ 자신의 아이 때문에 펄펄 뛰어 다닌다는 것이다.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진 딕 호이트(Dick Hoyt)와 같이 중증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자신의 아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밀며 수십 년 동안 69회의 마라톤을 뛴 유명한 사례가 있는가하면 개인적으로는 두개골 골간당 이형성증(CMD)의 희소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달리는 친구도 있다. 마라톤을 하면서 기금을 모금하는 부차적인 목적도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더 큰 목적은 그렇게라도 자신의 아이들의 이름을 걸고 죽어라고 힘든 마라톤을 뛰면서 남들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사항일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단 1초라도 눈길을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뛰는 21킬로미터는 쉽지 않았다. 절반을 뛰고 나서는 서서히 다리의 근육이 팽팽해지면서 그대로 멈추고 싶은 내 자신을 계속 되잡아야 했다. 해프마라톤 결승지점을 보면서 감각이 없어진 두 다리에 마지막 힘을 주어 가쁜 숨을 조금 더 끌어야만 했을 때는 숨을 제대로 고르기조차 힘들었다. 결승지점 가까이에서 열렬히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타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서 멋대로 이들이 모두 자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초보 마라토너인 나를 후원해주러 나왔다고 생각했다.

결승지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에반이를 꼭 품에 안던 그 순간은 땀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면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감사하는 엄마가 됐다. 나는 마음이 벅차도록 감사하던 그 순간을 마라톤을 완주할 때까지 잊지 않고 한결 같이 연습하리라 다짐했다. 마라톤을 완주할 때는 이번처럼 수줍어하지 않고 자폐를 알아달라고 주변에 조금은 귀띔을 하고 뛰어볼 예정이다. 나의 작은 땀방울이 에반이의 자폐를 알리는데 쓰인다면 그 연습과정이 마냥 힘들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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