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그는 눈물의 선지자였다. 그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해 초토화 되었을 때 쓰라린 가슴을 안고 조국의 아픔에 눈물로 외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던 말이 아니었다. 그들이 듣고 싶어했던 말은 하나니야가 대신했다. ‘괜찮아~괜찮아~2년안에 우린 해방될꺼야!’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여전히 재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어림없는 소리,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동기들끼리 서로 걸어 넘어뜨리고 친구들끼리 서로 모함하며 돌아치는 세상! 참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세상, 서로 속고 서로 속이니 거짓말만이 입에 익은 입이 비뚤어진 세상! 백성을 억누르는 일과 사기치는 일만이 꼬리를 무는 세상! 이처럼 세상을 질타하는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눈엣가시였을 뿐이다.
아, 그는 왜 그리 바보처럼 세상을 힘들게 살았을까? 적당히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 몇마디 던지며 그들의 심기를 위로해 주면 인기를 차지 할수 있었을텐데… 목에 스스로 나무 멍에를 메고 깊은 웅덩이에 던져져 죽을 위기를 당하면서까지 그리 고집스럽게 세상과 충돌을 하며 살았을까? 그가 흘린 눈물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뺨을 얻어 맞으며 모욕을 당하고 서러움을 당하여서만일까?
아니지, 그것보다는 그렇게도 목이 터져라 외쳐대도 친구들끼리 모함하고 거짓말만이 난무하는 입이 비뚤어진 세상, 사기치는 일만이 꼬리를 무는 세상이 버젓이 흘러가고 있음 때문이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그것은 세상과의 불화요 충돌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과의 충돌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 세상과의 충돌!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과 충돌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감에 있다.
그러나 오늘 교회는 세상과의 충돌을 두려워하며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을 전하지 않는 일에 익숙해 있지는 않을까? 교회는 오히려 세상에 편승하여 얻어지는 안락함에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불의한 권력을 질타하고 사람들의 위선과 숨겨진 죄를 고발하는 예레미야의 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는 있지 않은가? 예레미야의 눈물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