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를 보니 일본 극우파라고 하는 데모대가 피켓을 들고 도쿄 중심가를 행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눈에는 그 데모대가 최소한 천 단위가 돼 보였다.
그런데 그 피켓에는 한글로 쓰여진 것도 있었는데 그 내용이 “위안부는 곧 창녀이다”, “이미 다 주었는데 또 무슨 배상이냐” 등이 눈에 띄었다. 나는 평소에 위안부 할머니들 대책을 한다는 단체들이 배상, 배상해서 “이거 잘못하고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났구나 하면서 혀를 찼다.
지금 일본에 데모는 인권 유린, 희생자 명예 회복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돈 문제로 싸움을 바꾸려는 전략이다. 그리고 이 빌미를 준 것이 대책위원회에서 요구한 배상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사실 “사과하라, 그리고 배상하라” 라는 것은 한 줄의 말인 것 같지만 아주 다른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보상하라는 요구는 그 요구가 위안부 할머니, 좀 더 나아가서 한국 대 일본이다 그리고 돈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사과하라는 그 요구는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한국이 아니라 전 인류의 인권, 인간의 존엄의 외침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것은 전 세계 대 일본이다.
일본계 혼다 연방 하원의원이 앞장서 미 국회에서 결의안 통과를 얻어 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 배상이란 돈 문제라면 처음부터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사과하라를 계속 요구하되 배상하라는 것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한다. 또 배상 요구의 승산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들 중에는 한때 한국의 창녀촌에서 빈번이 있었던 창녀 인신 매매 정도로 생각도 하고, 그리고 비록 군표니 무엇이니 해도 대가를 지불한 성 행위이었다고 받아들이고, 더군다나 한일 청구권 청산에서 다 해결 되었다고 하기도 하니, 이 논쟁을 이어 간다면 위안부 할머니 명예 회복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돈 문제만 부각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제 배상 이야기는 그만 하자.
사과하라,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너희들 교과서에 이 만행을 써 넣으라든지, 야스쿠니 신사 옆에 그분들을 위한 절을 지어 달라든지, 아니면 위령탑을 세워 달라든지 이러한 요구로 바꾸면 어떨까?
한편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으나 ‘정로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본과 러시아의 소위 노일 전쟁 후 일본에 많은 상이군인들이 생겼다. 당시 일본의 복지도 별 볼일 없었을 때 이었다. 지금은 정로환의 정 자가 바를 정(正) 자이지만 당시는 정복한다는 정(征) 자이었다. 그리고 노일전쟁 상이군인들에게 이 정로환 독점 판매권을 주어 생계를 해결해 주었다.
한국에 무슨 드링크 하나를, 예를 들어 감기약 하나를 (극복 드링크) 라고 이름 붙이고 그 판매 이익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복지, 명예 회복, 기념사업에 쓰도록 하면 어떨까.
이제는 대한민국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못 보살 필 만큼 가난하지 않다. 자꾸 일본에 배상 요구는 상스러운 말로 “쪽팔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