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 번째 남편

2012-08-10 (금)
크게 작게
의식이 생기자 곁에서 간호사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내가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면을 취한 것처럼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다. 수술실로 옮기기 바로 전 “긴장을 풀어드리겠다”며 링거튜브에 연결된 손등의 주사호스를 다른 것과 바꾼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뒤는 전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수술실과 가까운 회복실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40분 정도 걸렸다고 했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자니 눈은 가려져 있어도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올 봄 정기 건강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다. “눈꺼풀이 처져서 운전하는데 지장이 많다”고 허풍을 좀 섞어 말했더니 주치의가 의외로 선선히 수술을 권한 것이었다. 노인성 안질환은 메디케어나 메디칼로 수술이 용이하지만 눈꺼풀 수술은 성형으로 분류돼 심하지 않으면 가급적 시술해 주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은 특히 그런 성향이 큰 편인데 증상을 과장해서 말한 것도 그런 방침을 호도하려는 술책이었다.


담당 주치의가 허락했다고 금방 수술로 들어가지 않았다. 수술에 관한 시청각 교육에 이어 수술이 꼭 필요한지 재검사를 받은 뒤에야 최종 승인이 났다. 그 후로도 두 차례나 출두하여 각종 건강상태를 체크 받고 유의사항을 들은 뒤 드디어 수술날짜가 잡혔는데 수술시간은 바로 전날 전화로 알려왔다.

수술하는 날 아침 접수를 마치고 대기실의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의료장치를 부착하고 나니 이제 정말로 수술하게 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오가며 비슷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차트를 점검하더니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을 마친 후 곧 퇴원해서 이틀간 꼼짝 않고 누워 지냈다. 아내는 부어오른 눈두덩을 가라앉히기 위해 얼음찜질을 하거나 혹시 생길 염증을 막기 위해 연고를 발라주었다. 아내는 “무섭게 보인다” “이상하게 생겼다”라며 놀렸다. 그래도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는 말처럼 곁에서 열심히 치료해 는 아내가 고마웠다.

우리 집 벽에는 나와 아내 그리고 가족사진 몇 점이 걸려 있는데 사진 속의 나와 현재의 나의 생김새가 너무 달라서 나를 아내가 재혼한 두 번째 남편으로 여기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날카롭고 삐쩍 말랐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이 너무나 변해 있으니 말이다.

며칠 지나면서 소파에 기다랗게 누워 TV 연속극도 즐기고 웬만한 바깥출입도 자유롭게 할 정도가 되었다. 아내는 무슨 유세인양 계속 대단한 환자 노릇하는 것이 꼴 보기 싫었는지, 아니면 혼자 젊어 보이는 내게 시기심이 생겼는지 “사기꾼 같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럴 때 가만 있으면 두고두고 밀리는 법이다. “세 번째 남편 만나서 좋으시겠습니다.” 아내는 의외의 반격에 즐겁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아내는 그동안 멋있는 세 남자와 살았지만 날씬한 아가씨는 어디 가고 할머니가 된 한 여자 하고만 살고 있는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아내에게도 눈꺼풀 수술이든 보톡스 주사든 권유해야겠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