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가식서가숙

2012-07-28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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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옛날 제(齊)나라에 시집가야 할 나이의 한 예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처녀 집에 두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 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특출하지 못했으나 대단한 부자였고, 서쪽 집은 매우 가난했지만 신랑감은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난처하게 된 부모는 당사자의 마음이 중요하다며 딸에게 물었다. “만일 동쪽 집의 총각에게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소매를 걷고, 서쪽 집 총각에게 가고 싶으면 오른쪽 소매를 걷어라” 한참을 망설이던 처녀는 양쪽 소매를 다 걷어 올렸다. 부모가 까닭을 묻자 딸은 “낮에는 동쪽 집에 가서 좋은 음식을 먹고 싶고, 밤에는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절개 없이 이리저리 빌붙음을 가르키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을 의미한다. 오늘날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 다님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흔히 줏대 없이 이편 저편 넘나드는 것을 보고 박쥐 같은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박쥐는 본능대로 사는 것 뿐인데 들짐승 편에 붙기도 하고, 날짐승편이 되었다가 하는 나쁜 동물로 만들어버렸다. 이와는 달리 이솝 우화에서는 박쥐를 싫어하는 족제비와 새를 잡아먹는 족제비에게 잡혔을 때, 자신의 상황에 맞는 표현으로 목숨을 구한 지혜로운 동물로 묘사됐다. 어찌되었든 박쥐는 지혜롭고 현명하기도 하며 간악하고 이중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표현한 것이리라. 박쥐 같은 사람이 많은 사회는 불신이 조장되며 흔들리는 사회가 되고 만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 좋은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도 같이 동행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넘어져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발로 밟고 지나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넘어진 사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발로 밟는가! 오만의 자리에 앉아 본인은 넘어질 리 없다고 교만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교만은 악의 근원이다.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 붙었다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으면 신의를 헌신짝처럼 걷어차고, 이편 저편 넘나드는 사람은 이간질에도 능하다. 사람들은 가식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 앞에서 살랑거리며 비위를 맞추고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은 누구나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하고, 칭찬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비난은 사랑 없이 공격하고,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권면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 주기만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인생을 김장에 비유해본다. 여성들이 해마다 하는 김장을 30번에서 길어야 40번 하면 어느덧 인생의 황혼녘이 된다. 모두에게 공평히 주어진 시간에 얼굴 붉히고 헐뜯으며 상처 입히고 그렇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을까! 곧은 이성과 너그러운 감성, 뜨거운 심장으로 남은 인생 2막을 따뜻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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