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약자의 변(辯)

2012-07-2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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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깊은 산 양지바른 산골짜기/ 한포기 이름 모를 꽃 피었네/ 찾는 이 없어도 벌 나비의 노래와 춤만은 끊이지 않네/ 얼음 녹아내린 시냇가에 향내가 넘쳐흐르네/ 아름답다 이름 모를 꽃.” 중학교 때인가 배운 중국 민요로 기억되는데, 어쩐지 그 가사와 곡조가 내 마음에 선명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향기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사가 꼭 마음에 닿는다. 본인의 아내도, 본인도 산들 바람에도 온 몸이 휘청거리는 연약한 코스모스를 비롯해, 인적 드문 길가나 산기슭에 수채화처럼 피어있는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야생화에 마음이 더 끌린다.
질곡이 많은 인생행로에서 때로는 사방으로 우겨 쌓인 끔찍한 역경, 심한 신체적 장애 등 말 할 수 없는 고난을 초인간적 의지와 결단, 또는 믿음으로 훌륭히 극복한 분들을 가끔 만난다.
이분들은 비슷한 역경에 처한 분들에게 큰 용기와 도전을 주지만, 한편 생각하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기의 모습에 더욱 실망과 좌절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 사실 역경이나 장애를 통해 오히려 더욱 큰 일을 성취하는 분들은 극소수인데도, 이러한 분들을 접하면 자기만 그렇게 역경에 눌려 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 다른 유전적 요소를 소유해 그 성격, 특성, 강점과 약점 등 모두 다르게 태어나는데, 외형의 차이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쉽게 인정하지만, 보이지 않는 생리적 내면의 차이는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나 자신 연약하여 쉽게 무너지는 점을 비롯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원망스러운 실망을 느낄 때가 있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연습을 뒤늦게나마 하고 있다. 똑같은 불이 철을 단련하여 강철로 바뀌게도 하지만, 버터는 아주 녹여버린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인은 아무래도 철 보다는 버터 쪽에 가까워, 운동경기를 비롯해 늘 약자편을 응원하는데, 강자에 대한 약간의 시기심과 약자에 대한 동병상련의 감정이 적당히 조화된 것 같다.
인간은 꼭 강인한 의지와 결단으로 계획과 목표를 차질 없이 이루어 나가고, 늘 남보다 한 발 앞서 성취해 성공자 명단의 상단을 차지해야만 행복한 존재일까? 인생의 드라마는 무대의 연극과 같아서, 비록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그 배역에 관계없이 모두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이라 생각한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남기고, 끊임없는 경쟁을 뚫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목적을 이루는 것이 미덕이 된 자본주의 경제관에 물든 현대인들은 자칫 잘못하면 각광을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행복하다는 인생관으로 물들기 쉬워 조심할 일이다.
누군가는 “무능은 무죄다”라는 글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잘되지 않는 일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현실을 지적했는데, 본인은 “약함도 무죄다”라고 말하고 싶다. 꼭 강한 것만이 인생의 모습을 풍성하게, 아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약자의 변을 늘어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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