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반도의 반쪽 북조선. 지구상에 그 짝을 찾아보기 힘든 나라. 직접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들을 수 없지만, 심장으로 보고 들으려 하면 그곳의 고통의 신음소리, 울부짖는 소리는 엄연한 현실로 우리의 가슴을 짓누른다. 최근 북한의 정치 수용소를 극적으로 탈출한 신동혁씨 와의 인터뷰를 소재로 한 ‘14 수용소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수용소에서 유일한 탈출 성공자라는 그의 이야기는 차라리 사실이 아닌 과장된 이야기라고 믿고 싶다. 그가 들려주는 수용소의 참상은 내가 경험한 인간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몰랐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도 못했고,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위 모범 죄수에게 주어지는 특혜로 두 남녀 죄수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부로 맺어지고, 수용소의 규율에 따라 허락되는 제한된 부부관계를 통해 신동혁은 태어났다. 부부의 당연한 행위인 성관계마저도 당국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인간사회 이하의 환경에서 그는 그렇게 태어났다.
배고픔, 고된 노동, 구타와 욕설로 점철된 동물에 가까운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 그 귀한 쌀밥을 형에게만 몰래 지어주는 어머니를 분노로 목격하고, 어머니와 형이 탈출 계획을 상의하는 것을 엿듣고는, 신동혁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당국에 고발하여 그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와 형은 사형을 당했다.
그 당시에는 그 둘을 죽게 한 고발에 대해 조금의 양심의 가책과 후회의 괴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는 그의 고백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수용소의 오랜 수감 생활 후 예외적으로 풀려나온 이순옥 여사의 증언을 듣고 읽었고, 중국에서 직접 만난 탈북 자매들의 입으로 이북의 참상을 들었지만, 이 책을 통한 그의 증언은 나를 더욱 참담하게 한다. 배가 너무 고파 강냉이 몇 알 훔쳐 주머니에 넣은 6살 난 소녀를 그 죄 때문에 때려서 죽게 하다니….
우리는 애써 귀와 눈을 가리고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하지만 그곳 수용소의 비극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악행을 지금까지 3대째 자행하는 정부는 속히 무너지고, 변화된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국가의 3대 요소 중 ‘국민’은 빠지고, ‘통치자’와 ‘영토’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둠에 묻혀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곳 백성들에게도 구원의 빛, 진리의 빛이 비춰야 한다. 예수도 나를 괴롭히고 해를 끼치는 상대를 향해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흑암의 세력’을 사랑하라고 한 적은 없다. 오히려 대적하라고 가르쳤다.
몇 년 전 워싱턴 연방 의사당 앞의 ‘북한 자유의 날’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북의 인권 말살과 억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연방 의회의원 여러 명이 참석해 연설을 했다. 그 중에 한명, 아마도 ‘토니 홀’ 하원으로 기억되는데, 그는 “만일 우리가 이북의 인권탄압에 침묵한다면, 나치당이 유대인을 대량 학살할 때 기독교 교계가 침묵한 것에 대한 역사의 심판과 똑같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우리가 직접 목격하지 못하고, 그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침묵한다면, 더 나아가 그러한 정부에 동조한다면, 언젠가 통일이 되어 이북의 동족들을 마주 대할 때 ‘우리가 그 같은 고난의 눈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낼 때에 당신들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우리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감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