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리창과 창호지

2012-06-2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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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유리창은 집안의 분위기를 한결 밝게 해 준다. 유리창은 안과 밖의 세상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시원함이 있다. 답답할 때 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가 가슴으로 스며들고, 밖에서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면 쌓여 있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씻어내리는 듯하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는 쓰러진 영혼의 귀에 힘을 내라고 사랑의 애교처럼 들린다. 마음을 보여주는 유리창이 서로를 향하여 열릴 때 사람에 대한 애착을 더 갖게 한다.
이런 유리창이 아름다움도 줄 때가 있지만 도시의 유리창은 가끔씩 깨지게 된다. 깨어진 유리창이 서 있는 건물을 밉게 보이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살다가 부딪히고, 싸우고, 경쟁하고, 각자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다 그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창이 깨어져서 서로 마주 보기에 민망할 때가 있다.
미국의 사회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James Wilson)과 조지 캘링(Jeorge Kelling)이 주장한 ‘깨어진 유리창 이론’이란 것이 있다. 깨어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작게 일어 날 수도 있는 범죄가 더 큰 범죄를 유발한다는 이론이다. 이해할 만한 논리이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작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작은 것들의 방치가 결국 큰 일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아 마음의 유리창이 깨어졌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더 많이 준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살기에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없다. 이미 마음의 창이 깨어져 시야를 굴절시키기 때문이다. 굴절되고, 왜곡된 유리창을 그대로 두면 럭비공이 튀기듯이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게 된다.
유리창이 보편화되기 전에 옛날 우리들의 문은 창호지로 되어 있었다. 창호지의 단점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없고, 밖에서 안을 볼 수 가 없었다. 그것이 신비의 장막이었다. 그래서 안에서 밖을 보고 싶은 사람은 창호지에 손가락만한 구멍을 조용하게 내었다. 이는 밖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람이 뚫고 저 사람이 뚫고 해서, 오래 세월 지난 창호지 문은 여기저기서 구멍이 나게 된다.
보기에는 별로 예쁘지 않지만 그런대로 정감이 가게 된다. 창호지의 구멍이 유리창의 깨어진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은 깨어진 것은 붙이기 힘들지만 뚫어진 구멍은 종이로 붙여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관계는 유리창의 관계보다는 창호지의 관계가 더 멋있다. 한꺼번에 다 보여주기 보다는 조금씩 구멍을 내면서 알아갈 때 더 오래가고, 더 재미있고, 또 문제가 생겨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리창의 관계였다면 창호지의 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다시금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조금씩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고, 또 내 마음을 조금씩 열어놓고, 그래서 바람도 막고, 서로를 보호해 주는 그런 창호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는 오래 지켜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한꺼번’에 모두 다 보다는 ‘조금씩’ 오래 가는 것의 신비로움을 즐기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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