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올려 보는 거인
2012-06-21 (목)
몇 년 전에 필자의 처갓집 뒤편 언덕에 위치한 공주 영명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교장실 뒷벽에 12살쯤 되어 보이는 햇볕에 얼굴이 약간 그을린 앳된 소년의 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다.
책가방도 없이 하얀 책 보따리를 허리춤에 꼭 맨 채 맨발로 10리쯤은 걸어서 금방 학교 운동장에 도착한 듯한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시골소년의 주인공이 바로 초등학교 시절의 조병옥이란다. 그가 한때 뉴요커로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그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그의 얼굴 깊숙이 패인 주름 속에서 그 어렵고 힘든 인고의 세월을 조금이나마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하나님의 큰 사랑과 도움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 했을 것이다. 뉴욕 근교에는 그의 학창시절 삶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승만을 독재자로 몰고 갔던 정치 아부꾼들에 맞서 그는 생명을 무릅쓰고 약자인 국민들의 편에 섰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내세웠으며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인기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이승만도 미 국무성에 보고할 때 자신의 후임 한국 대통령 감으로 조병옥을 강력히 추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6.25전쟁 당시 전시 내무장관으로 재직 시 대구 철수방침을 시달한 워커 미8군 사령관에게 “만일 대구가 무너지면 나는 후퇴하지 않고 시민들과 같이 죽겠다”라고 유창한 영어로 설득해 대구를 끝까지 사수하고 낙동강전선을 방어하도록 전투계획을 수정하게 된다.
낙동강전투에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빛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최전방으로 향했던 내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만약 대구가 무너졌더라면 부산까지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김일성이 원했던 작전 계획이었다. 남한이 송두리째 넘어갈 뻔 했다. 하마터면 지금의 강대국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을 뻔하였다.
총검의 협박과 금전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꼭 다문 한 일자 입처럼 말없이 끝까지 자유주의를 사수해온 그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병마, 위암이 발생했다는 청천병력 같은 나쁜 소식은 민주주의를 진심으로 원했던 그 당시 모든 국민들의 가슴속에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는 미국 최고병원인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아깝게도 병원에서 타계하고 말았다.
‘무호동중이작호’란 말이 있다. 호랑이 없는 굴속에 이리가 호랑이 흉내 낸다는 뜻이다. 한국은 지금 12월 대선을 앞두고 자격미달의 대통령 후보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만약 호랑이 같았던 그가 살아서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지금 한국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6.25를 앞두고 그의 불굴불요의 자유정신을 되새기면서 뇌리에서 아주 잊혀질 뻔한 거인의 위대한 족적을 재조명해 본다. 대구를 조병옥 특별시로 명명한다고 해도 그는 전혀 손색이 없을 위인이라고 생각한다.
추재옥/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