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생님

2012-06-0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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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만각(晩覺)입니다.” 지난달 14일 저녁밥을 먹고 TV 앞에 앉아서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걸려온 수화기 속을 울리는 정감이 넘치는 다정스런 목소리였다. 거의 두 달이 멀다고 걸려오는 전화이다. 대화래야 그리 길지 않는 짧은 인사말로 끝난다. 그래도 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전화보다 반갑고 마음 한편으로는 고맙고 황송한 맘을 떨칠 수 없다.
만각(晩覺)은 97세 김재완 할머니의 필명(雅號)이다. 지금은 노약하여 거동이 불편하여 일절 외부의 출입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지내시는 형편이다. 만각은 늦게 터득했다는 뜻에서 내가 지은 필명이다. 나는 만각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일본의 유명한 늙은 시인 시바다 도요님의 생각이 난다.
나와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중앙 시니어센터에서 문예반을 지도할 당시 86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시겠다고 문예반에 들어오셨다. 강의 시간을 거르는 일 없이 다른 시니어 학생들의 모범이 될 정도로 강의에 열정을 내셨다. 그러다가 굽은 허리에 지팡이까지 집고서도 출석할 정도로 글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셨다.
그 엄청난 집념과 노력이 결국 시, ‘고향’ ‘인생’ ‘울 엄니’ 등 신문지상에 상재하며 동인시집 ‘그루터기’에 창작 시 여러 편을 수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하시더니 90세 가을학기를 마지막으로 중앙 시니어센터에 발걸음을 끊으셨다.
나는 내 일평생 선생님이란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과거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교직생활을 통하여서, 그리고 어쩌다 보니 사회에서도 교육을 담당하는 입장에 임할 때가 많았다.
현재도 80넘은 나이에 중앙 시니어센터에서 그리고 메시야 평생교육원에서 문예를 지도하고 있다. 그래서 ‘선생님’이란 칭호를 듣는데 예사롭다. 그런데 만각 할머니의 ‘선생님’ 소리는 내게는 특별한 의미와 선생님에 대한 고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현재 100살 가까운 늙은 어른으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는 사람이 그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망구(望九)의 황혼시기에 잠시 맺은 사제 간의 인연을 잊지 않고 쇠한 기력임에도 깍듯이 윗사람에게 문안을 하듯 잊지 않으시는 만각님의 자상하고 자애롭고 깊은 인간미에 진심으로 고마움과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히려 만각 할머니로 인하여 많은 인생 교훈을 배운다. 겸손함과 작은 고마움도 잊지 않고 감사하는 혜시(惠施)의 마음과 찐 만두와 같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며 격려가 된다는 사실을, 또 언제 찾아뵙고 문안을 드려야겠다.
지난 스승의 날 전화로 찐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으며 새삼 ‘선생님’에 대하여 큰 보람과 숭고한 이미지와 긍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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