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김(C2Education 원장)
뉴욕시 교육청이 표준시험에 ‘공룡’이나 ‘핼로윈’과 같이 보편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신념을 담고 있는 단어 사용을 금지했을 때 그들은 ‘파인애플’도 포함시켰어야 했다. 지난 달 수 천 명에 달하는 뉴욕의 8학년생들은 뉴욕주 표준시험 예문으로 출제된 ‘말하는 파인애플’ 때문에 당황해야 했다.
일명 ‘파인애플 사건’은 파인애플이 토끼에게 달리기를 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의 시험 지문에서 비롯됐다. 이는 아동 도서 저자인 다니엘 핑크워터의 소설책을 각색한 지문으로 원문 저자인 다니엘 핑크워터는 "내 책의 일부를 시험 지문으로 인용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넌센스의 대가이기 때문"이라며 ‘파인애플’ 사건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각색된 지문에서 파인애플은 토끼에게 경주를 하자고 제안한다. 움직일 수 없는 파인애플이 달리기의 대가 토끼에게 경주를 제안하자 숲 속 동물들은 파인애플이 토끼를 이길 수 있는 어떤 묘안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는 모두 파인애플의 승리에 한 표를 던지게 되었다. 하지만 경주가 시작되자 토끼는 휑하니 달려가 결승점에 먼저 도착했고 파인애플은 출발점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동물들은 파인애플을 먹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황당한 지문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이 지문에 대한 시험 문제였다. 즉 동물들이 파인애플을 먹어 버렸다는 이 황당한 결말에 대해 ①“동물들은 왜 파인애플을 먹었는가?”라는 질문과 ②“어느 동물이 가장 현명한가?”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이 출제됐던 것이다.
질문의 황당함은 비단 학생들 사이에서만 제기된 것이 아니어서 급기야 주 교육국장은 해당 질문들을 시험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교육국의 입장 발표로 점수가 다음 학년 진급 경계선에 있었던 학생과 교사들에게는 큰 위안이 됐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시험 문제는 피어슨사가 3,200만 달러의 거금을 받고 맺은 계약에 따라 출제한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받고 엄청나게 황당한 문제를 출제한 피어슨사는 ‘파인애플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기보다는 회사의 법규상 출제 문제에 대해 논평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우리는 교사의 자질 문제와 학교 이사회의 관료주의, 교육의 표준 및 학교 선택 등의 문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립교육을 향상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공립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빅 3’로 알려진 피어슨, 맥그러힐, 휴턴 미플린 하코트가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각종 교육 교재 시장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교과서 시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다. 그리고 이 엄청난 이윤을 나눠 갖는 사람들은 ‘빅 3’다. 수십 년 전에는 교과서 시장이 12개 이상의 출판사들에 의해 주도됐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큰 출판사들이 작은 출판사를 인수 합병하게 됐고 오늘날은 실질적으로 빅 3만이 교과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의 전체 교과서 시장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80% 이상이다.
문제는 빅3가 독점하는 교과서 시장의 현황이다. 현재 교과서 시장의 가장 큰 세 가지 문제점은 첫째로 실질적인 저자가 없다는 점, 둘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는 점, 셋째는 교과서의 내용이 형편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저임금의 임시 종사자에 의해 쓰여지고 있고 저자란에 올려진 이름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교과서 집필이 다 이뤄진 한참 뒤에야 저자를 정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새로운 버전의 교과서에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컨셉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쟁사가 사용한 개념을 다시 재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교과서 시장은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이윤추구가 최대의 목적이 되고 있어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심오한 지식을 심어 주려고 제작한다기 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빅 3덕분에 학생들은 1년에 무려 180일이나 되는 시간을 교육보다 이윤을 위해 제작된 형편없는 교과서를 읽어내야 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교육에 신경을 쓰는 부모들의 혈압은 치솟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연방낙제아동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시행 이후 ‘시험’ 시장이 수십 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면서 빅 3는 이 시장까지 독점적으로 장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이윤 추구를 위해 제작하는 빅 3에 의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시험지가 제작되고, 시험이 관리되며, 점수가 매겨지고 있는 것이다. 시험 문제의 정확성과 내용보다는 이윤 추구와 스피드가 관건이 된 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파인애플 사건’과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직 시험 출제자였던 타드 팔리가 허핑턴 포스트에 기재한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팔리가 시험 출제 회사를 위해 일할 때 그의 스태프들은 두 달 동안 무려 200개 이상의 공통 표준시험 문제를 만들도록 지시받았다고 한다. 이 엄청난 작업량 앞에서 직원들은 매우 지친 상태가 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량을 채워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전에 사용했던 문제를 재탕 또 재탕하는 것이었고, 인력을 보충하려고 교육이나 시험 관련 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풀타임 시험 개발자로 고용했으며, 이전에 문제가 있어서 해고됐던 벤더들을 재고용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회사들이 출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험 관리에 채점까지 맡게 되면서 시험 점수에 정확성을 기하지 않고 많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점 오류는 놀랄 만큼 많이 발생하고 있고 주 단위 표준시험(애리조나, 워싱턴, 버지니아,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미네소타 등)에서 나타난 채점 오류 뿐 아니라 2006년 SAT에서 피어슨은 무려 4,000명의 응시자에게 실제보다 낮은 점수를 주는 실수도 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슨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답안지에 습기가 너무 많아서 채점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시험점수에 의해 학년 진급이 결정되고, 진학할 대학이 결정되며, 교사의 실력이 결정되는 환경에서 이렇게 무책임한 시험 관리를 받아 들여야만 하는가?
’파인애플 사건’은 웃음이 나오는 시험 문제인 동시에 그 밑에 깔린 문제의 심각성은 교과서와 표준 고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낳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