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정이라는 깊고 날카로운 무기

2012-05-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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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만큼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곳은 없는 것 같다. 가정만큼 이중적인 모습을 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여자, 그러나 집에서는 매 맞는 여자일 수 있다면 너무 끔찍한 억측인가. 너무도 서로 사랑해주는 것 같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 가족들이 당신 주위에 있다면 어쩌면 그들 자신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지옥을 가정에서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정은 최상의 사랑과 공감이 시작되며 완성되는 장소이며, 가족은 그러한 사랑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관계들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와는 정반대로 지독한 상처와 아픔, 배신과 침묵, 고난과 외로움을 또한 줄 수 있는 장소이며 사람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인사회는 안녕한가. 사실 이민사회에서 가정 혹은 가족의 의미는 더욱 이해하거나 해석하고 다루기가 매우 힘들고 복잡한 상담 주제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민생활의 시작이 형제나 자매 혹은 부모의 초청이 있어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형제나 자매를 도와주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내는 형제나 자매를 이용해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키워보자는 속셈으로, 상대방은 그런 계략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이민이라는 ‘모험의 발걸음’을 위험하게 내딛게 된다. 그 후의 과정은 굳이 설명 안 해도 이해가 가리라.

가정에서 가족에 의해서 받는 상처는 매우 깊다. 타인에 비해서 상처를 일으키는 관계가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그 상처의 관계는 십중팔구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가슴 아픈 것은, 남편이나 아내, 시부모나 장인 장모 등으로부터 받은 모욕과 부당한 대우, 비난과 받아들여지지 못함의 아픔들을 5년, 10년, 길게는 15년에서 20년까지도 겪어야만 했고, 지금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 가족에 의해서 받는 상처는 또한 매우 예리하다. 그래서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 대상이 아내든 남편이든 혹은 자식이건, 한 번 그 칼에 찔리면 그의 마음, 정신, 몸, 영은 산산조각으로 망가진다. 그래서 치유가 매우 힘들고 오래간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어쩌면 그저 한 가족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 나에게는 그 정도 요구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한다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신의 꿈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남편과 아내를, 자녀들을 살리고 싶다면, 꽃이나 선물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나는 당신의 부모이기에, 남편이기에, 아내이기에, 시부모이기에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야만 한다는 아집과 독설은 다름 아닌 폭력이라는 이해를 갖는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을 서서히 죽일 수 있는 살인행위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가족이 회복과 화해와 치유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이 5월에 생각해 본다.


장보철/ 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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