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정한 효

2012-05-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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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가정을 생각하면 자연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부모를 섬기는 자녀의 도리를 효라고 한다. 시대가 변할지라도 효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효의 의미와 표현 방법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효의 개념과 표현 방식에 대한 부단한 성찰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이후 우리 한민족의 자녀교육 교과서라면 단연 ‘효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효도관이나 자녀관은 여기에 영향 받은 바가 적지 않다. 그런데 효와 관련하여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왜곡되게 해석된 효경의 일부 구절이 있어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사자성어가 그것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출세하여 이름을 떨침’이라는 의미다.

입신양명이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효의 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입신양명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우리의 민족의 자녀관이나 교육관이 협소화되고 천박해 질 우려가 있다. 자칫하면 우리 자녀들의 공부와 노력과 성취와 출세의 목적이 결국 자신이나 가문의 이름을 날리는 ‘양명’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언급하셨다는 원문을 보면 양명 앞에 ‘입신행도’(立身行道)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도 즉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행함으로’라는 뜻이다. 이 문장에서는 ‘행도’가 핵심이다. 입신은 행도의 전제 조건이요, 출세는 행도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매우 중요한 ‘행도’를 생략하고, 입신과 양명을 곧바로 연결시켜 놓았다. 아마도 학문적 성찰이 부족하거나 출세 지향적 욕구가 큰 소인 유학자의 해석인 듯하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왜곡 조합된 ‘입신양명’ 네 글자를 효의 요체인양 금과옥조로 여겼다. ‘행도’가 빠진 채 입신양명이 되니, 원대한 학문적 노력이나 부모를 향한 지극한 효가 단지 자신과 가문의 부귀영화를 얻고 드러내기 위한 성취의 한 방편으로 왜곡되었다. 인간의 순수한 품성인 효는 물론 입신과 행도의 고결한 가치를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천박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효의 모범으로 대표되는 ‘입신양명’ 네 글자에 담긴 이러한 출세 지향적 사고가 은연 중 우리사회의 자녀관과 교육관에 들어와 때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작용하고 있다. ‘입신양명’처럼 왜곡된 효도관은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물론 미국 사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자랑스러운 한인들이 많이 있다. 같은 민족으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그러나 입신양명이 우리 자녀들의 노력과 성공의 목표가 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입신양명 곧 이름 석 자 날리고, 가문 빛내기 위하여 공부하거나 미국에 오지 않았다.

진정한 효도는 개인이나 집안의 이름을 날리는 ‘양명’을 넘어야 한다. 진정한 효의 길은 이름을 날리는데 있는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이루며 사는데 있다. 자신이 일하는 자리에서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위하여 기여하는 삶이 곧 진정한 효이다.


최상석/ 성공회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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