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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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의 여행

2012-05-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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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람만 여행하는가, 새들도 물고기도 씨앗들도 제각기 여행을 한다. 어디 생물만 여행을 하는가, 무생물도 여행을 한다. 몽고의 모래바람이 한국을 지나가고, 바닷물이 지구를 돌고, 우주는 별들의 왕래가 심하다.

예기치 않던 지진으로 여행에 참가한 축구공 하나가 일 년 동안의 긴 여행을 끝냈다. 알래스카주 미들턴섬 해안에서 발견된 이 축구공은 지난 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에 휩쓸린 축구공임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얼마 있으면 주인을 찾게 된다는 낭보가 있다.

알래스카주 카실로프에 살고 있는 데이비드 박스터는 동료와 함께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그 축구공을 발견하였다. 축구공에는 학생 3명의 이름과 학교명, 학년 등이 일본말로 쓰여 있어서 지진 피해지역에서 흘러온 것으로 알았다. 그는 곧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고, 미국 해양대기국(NOAA)의 도움을 받는 등 노력 끝에 마침내 축구공의 임자를 찾았다고 한다.이 실화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여러 가지 상념을 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그 첫째는 과학의 힘이다. 지진 발생 후 1년쯤 지나면 파괴된 물질들이 미국 서해안까지 닿을 것이라는 예상대로 축구공이 흘러왔다. 다행히 축구공 위에 적힌 글을 보고 인터넷 검색 등으로 주인을 찾아낸 것은 또 하나의 과학의 힘이라고 하겠다.

이어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만일 축구공에 기록된 것이 없었다면 주인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축구공의 주인을 찾아주려는 염원이 결실을 맺은 점이다. 그래서 데이비드 박스터의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없이 훈훈한 화제를 던진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다루는 물품이 따로 있다. 축구공을 잃어버린 무라가미는 그것이 7년 전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전학할 때 친구들과 선생님한테 받은 선물이기 때문에 항상 침대 옆에 소중히 보관하던 물건이라고 한다. 사실 쓰나미 때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지만, 평소 아끼던 물건을 잃고 얼마나 허전하였을까. 그러다가 축구공을 되찾게 되었으니 정말 기쁠 것이다. 마치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심경일 줄 안다.
오는 5월 말 박스터 부부가 일본을 방문하여 축구공을 직접 무라가미에게 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하나의 축구공이 국제적인 친구를 만들었다. 사랑은 작은 마음의 씨앗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인생에 있어서는 좋고 나쁜 일들이 항상 뒤바뀌기 때문에 미리 그것을 헤아릴 수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사람은 대지진을 겪어도 다시 삶을 즐겨야 하고, 쓰나미에 휩쓸려서 태평양을 혼자 떠다니던 축구공은 마침내 친구 무라가미를 만나게 된다.

그들 중 누군가의 생활 의욕이나 정신 감응도가 약했다면 일이 순조롭게 흐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무라가미의 축구공에 대한 간절한 욕구, 축구공의 끈질긴 생명과 주인에 대한 감사, 박스터 부부의 주인을 찾아주려는 갈망은 서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함께 기쁨을 맞이하게 되었다.
5월, 신록의 계절 첫날 아침 축구공한테서 이메일이 왔다. “나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무라가미를 만나러 가요. 앞으로 그와 함께 살 거에요. 그에게 일 년 동안 겪은 바다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박스터 부부와 다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친구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오가던 친구들의 만남을 축하한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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