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챔피언과 창피함

2012-05-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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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챔피언’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맨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홍수환 선수이다. 아프리카 더반에서 1974년에 아놀드 테일러와의 밴텀급 챔피언 전에서 판정승으로 이기고 어머니와의 전화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챔피언이라는 단어가 ‘고생과 수고 끝에 이루어진 영광과 행복의 자리’로 이해되었다.
요즘 아주 잘 쓰는 한국어를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대박’ ‘짱’ ‘완전’ ‘에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말이 ‘완전대박’이다. 무엇이든지 괜찮은 것, 좋은 것, 잘하는 것, 맛있는 것, 멋있는 것, 칭찬받는 일에 관한 모든 표현이 완전대박이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의 심리학적인 원인을 보면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숨겨져 있는 말이다. 누구보다 앞서야 하고, 무엇보다 잘해야 하고, 최고가 되어야 하고 일등이 되어야 하는 챔피언니즘의 현상이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전 40일 동안의 기간을 사순절로 지킨다. 사십일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활절 주일의 한 주일 전부터 집중하여 고난주간으로 지키는 교회들도 있다. 이 기간에는 오락이나 육체적인 만족, 개인적인 축하를 위한 것들은 가능한 자제하도록 가르친다. 기독교의 진리는 챔피언보다는 창피함에 더 큰 우선적인 의미를 두고 있다. 창피는 낮아지고, 실패하고, 부끄러움과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창피는 겸손한 모습이다. 남을 세워주기 위해서 자신이 부끄러움을 다 뒤집어쓰는 것이 창피함이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오라고 했다.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을 향해 손짓하지 않으셨다.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창피함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부르시고 계신다.
창피함의 의미는 굴욕과 모욕, 치욕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진리를 위해 어떤 수고와 고통도 감당하는 인내함이 창피함이다. 창피함은 순간에는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챔피언이시다. 그는 왕이셨고, 선지자였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서는 창피함의 길을 걸어가셨다. 가장 추한 죄인만이 지어야 하는 십자가를 지셨고, 옷 벗김을 당하셨고, 침 뱉음, 채찍, 모욕, 그리고 조롱하듯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그 앞에서 절까지 하는 야유를 보내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 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53:3).”
누구나가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기를 원한다. 최고이기를 드러내고, 일류를 자랑하고, 명품과 명문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참이 아니다. 진리와 참이 아닌 것은 없어지고, 망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영광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창피함의 삶은 오히려 영원한 영광의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게 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8-9).”
내가 꼴찌이고, 낙오자이고, 죄를 지은 사람이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챔피언이다. 자기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챔피언이다. 설령 성공했다고 해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지금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는 사람이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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