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빈손

2012-04-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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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19일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 기슭에 있는 6평 남짓한 작은 처소에서 한 분의 목사가 98세를 일기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 평, 집 한 채 소유한 적이 없었고, 저금통장 하나도 없었다. 그가 남긴 것은 40년을 사용하던 일인용 침대, 안경, 헤어진 양복 몇 벌과 낡은 성경책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막강한 힘과 능력으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의 삶은 오로지 교회와 하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였고 그는 20세기 현대 한국 개신교의 가장 참되고 신실한 목사로 사랑과 섬김의 삶을 바친 가난한 목사였다. 그는 세상이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긴 성직자 한경직 목사다.

많은 일을 이뤄놓고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으며 우대와 영광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가난한 길을 택했다. 고아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품고 사랑과 나눔의 삶을 택하였고 그들의 수준으로 낮아져서 섬기는 겸손과 청빈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매년 4월 꽃피는 봄이 오면 나는 항상 그분을 기억하며 그분의 흔적을 찾아 현 시대에서 보기 드문 목사로서의 품격과 업적을 되새겨 본다.

작년 겨울, ‘한경직 목사의 아름다운 빈손’이라는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25일 저녁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되었다. 과장되지 않은 한경직 목사의 삶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오늘과 같이 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반기독교 정서가 퍼져가는 시점에서 진정한 신앙인의 삶을 조명하는 큰 소망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유일한 한국인 목사였다. 그 상을 받을 때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상을 수상했을 때 상금 100만 달러를 받자마자 북한을 위해 써 달라며 전액을 기부하고 1분 동안 백만장자가 돼 봤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가 바친 돌봄과 섬김의 흔적은 기독교 봉사의 상징이 되었고 전쟁의 참혹한 역사의 현실에서 그는 사랑을 실천했다. 그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혼돈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우리는 이 시대를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성서의 교훈을 말로만 외치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많으나 실천하는 목회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하는 사회의 비판 앞에서, 한경직 목사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존경 받고 추대 받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그는 끝까지 영광을 거절했다. 영락교회에서 지어준 주택도 너무 크고 사치하다고 거절하고 6평 남짓한 작은 처소를 택하였다. 죽음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그는 세상에서의 소유를 거절했다.

낮아지고 겸손할 때 높임을 받는다는 성서의 교훈을 망각한 오늘, 대형화와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에서 권력과 영향력과 영광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이 많은 이 현실을 비추어 볼 때, 한경직 목사의 삶의 이야기는 오늘도 살아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꽃이 피는 4월의 봄이 다시 찾아온 오늘, 나는 한경직 목사의 사랑과 섬기는 삶의 흔적 속에서 그의 ‘아름다운 빈손’을 그려보며 나의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소망의 꽃이 피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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