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은 자장면이 많이 팔린 날이었다. 한국에선 2월14일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 선물을 주는 발렌타인 데이, 3월14일은 남자가 여자에게 하얀색 캔디로 되갚는 ‘화이트 데이’이고, 4월14일은 애인 없는 선남선녀들이 어울려 검은 색 음식인 자장면을 먹는 ‘블랙 데이’란다. 그렇게 연인이 된 남녀가 뽀뽀하는 날도 있다. 6월14일 ‘키스 데이’이다.
중국집 주인들이 블랙 데이를 정했는지 모르지만 날짜를 잘 못 잡았다. 14일은 ‘신도 침몰시킬 수 없다’던 세계최대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 도중 북극해역에서 빙산에 부딪친 후 침몰해 승객 1,500여명이 물귀신이 된 날(1912년)이다. 그 사고를 그린 영화 ‘타이타닉’이 15년만에 3D(입체)영화가 돼 지금 전국 도시에서 상영되고 있다.
흑인들에겐 1년 365일이 블랙 데이겠지만 특히 4월14일은 이들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날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조상들을 해방시켜 결과적으로 흑인 자손들이 떳떳한 미국시민으로서 백인들과 대등한 권리를 누리게 해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1865년)이다.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남북전쟁이 종결된 뒤 10여일 만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링컨은 147년 전 4월14일 모처럼 전쟁 스트레스도 풀 겸 워싱턴DC의 포드극장에서 당대 최고 비극배우였던 에드윈 부스가 출연하는 ‘우리의 미국인 사촌’을 관람하고 있었다. 연극이 거의 끝나가던 3막 도중 연극배우이자 열렬한 남부군 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가 VIP 관람석 뒷문으로 잠입해 권총을 링컨의 뒤통수에 대고 발사했다.
문호 톨스토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며 예수의 축소판’이라고 극찬한 링컨은 예수처럼 부활 못하고 미국 역사상 암살당한 첫 대통령이 됐다. 오늘날 대다수 미국인들은 ‘국부’로 불리는 초대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역대 대통령 44명 가운데 16대인 링컨을 업적, 위기관리 능력, 성품, 도덕성, 리더십 등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는다.
구두수선공이었던 아버지와 미혼모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둘 다 문맹인 부모의 무관심 탓에 초등학교조차 9개월밖에 못 다니고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다. 10살 때 어머니, 20살 때 누이, 42살 때 둘째 아들, 53살 때 셋째 아들이 죽었다. 1861년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주의원부터 부통령까지 각급 선거에 수십 차례 출마했다가 낙방했다.
점원으로 일한 젊은 시절 고객에게 거스름돈을 적게 준 사실을 깨닫고 한밤중에 몇 센트를 들고 찾아가 전달했다. 백악관에 입성한 뒤에도 자기 구두를 자기가 닦아 신었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술과 담배를 평생 입에 대지 않았다. 한 시골소녀의 권고로 수염을 길렀고, 그녀에게 약속한 대로 유세여행 때 일부러 그 아이의 마을에 잠깐 들렀다.
그는 해마다 자기 키(193cm) 높이만큼 책을 읽었다. 2분여짜리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쓴 불후의 문장가였다. 남북전쟁 때 한 각료가 “하나님이 우리 편이 돼달라고 기도하자”고 제의하자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도록 기도하자”고 타이른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자기를 고릴라라고 조롱한 정적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기용한 관용의 정치인이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올가을 대선을 앞두고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에선 현직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미트 롬니가 맞붙게 됐고, 한국에선 총선을 기적처럼 새누리당의 승리로 이끈 박근혜가 통합민주당의 문재인 아니면 아직은 무소속인 안철수와 겨룰 공산이 크다. 솔직히, 이들 다섯 명 모두 링컨에 비하면 키는 물론 경륜이 족탈불급이다.
한국에도 링컨을 ‘카피’하려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링컨처럼 16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불행히도 그는 퇴임 1년 뒤 링컨보다 더 비참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새겨 들어야할 링컨의 금언이 있다.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몇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윤여춘/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