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친구 이야기

2012-04-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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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하지만 어느 듯 정년퇴직, 노후대책, 노후 건강관리 등 이러한 단어들이 생소하지 않고, 이러한 주제의 글들이 눈길을 끌게 되었다. 생활환경과 의술의 진보로 수명이 날로 길어지니, 퇴직 후 오랜 세월을 준비 없이 맞으면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특히 서로 아끼고 품어주는 가까운 사람들이 없다면 고독한 말년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짧지 않은 세월 동고동락한 아내가 가장 가까운 친구로 느껴지니, 노년에 부부 사이가 안 좋다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은퇴한 한 동창의 부인은 남편이 자기를 어디든지 따라 다닌다며 남편을 “비에 젖은 낙엽”이라고 불렀다. 요사이는 “우(友)테크”라는 말까지 생겼다는데, 인생길에 부귀와 명예를 좇아 앞만 보고 달렸던 사람들이 뒤늦게야 서로를 아끼고 나누는 친구를 사귀는 우테크를 등한시 한 것을 몹시 후회한다고 들었다.

한때는 50여 개가 넘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업가 패트릭 몰리라는 분은 현재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일깨우는 ‘Man in the Mirror’(거울속의 사람)라는 기독교 사역을 하고 있다. 그의 책 ‘거울속의 사람’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그가 한창 사업에 열중할 때 재정문제로 친구 로버트를 찾아가 하소연 하였다. 사업의 조언이나 격려의 말을 기대한 그에게 로버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게도 뾰족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는데, 최악의 경우에 나에게는 너와 나 모두 먹고 살만한 돈이 있음을 기억해라. 내 모든 소유는 또한 네 것이다.” 이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임을 깨닫는 순간 이러한 친구의 우정에 감격하여 사업상의 문제는 갑자기 아주 사소한 일로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내 친구들 중에도 아름다운 우정의 실화가 있다. 현재 S대 약대 교수로 재직 중인 동창 S가 오래 전 대장암 3기말 판정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현재 D제약회사 사장으로 있는 동창 친구 L이 문병을 가서 병든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S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반면에 L은 불신자이었는데, 친구의 영혼구원에 관심을 가진 S는 자기를 위해 주일날 교회에 나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L은 회사일이 너무 바쁘고 고단하여 일요일에는 아침 늦게까지 충분한 잠을 자야 또 한 주간을 버틴다고 말하곤 했는데, 병든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그는 친구의 대장암의 완치 판정이 날 때까지 만 5년을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전혀 믿음 없이 피곤을 마다하고 병든 친구를 위해 만 5년을 교회 출석한 L과 무엇보다도 L의 영적 문제로 교회 출석을 소원했던 S, 정말 눈물겹게 아름다운 우정의 주인공들이다.

지금도 서로를 아끼고 자랑하며 학문과 제약의 영역에서 상부상조하는 우정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 서서히 황혼의 노을이 밀려오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곁에 있음은 자칫 메마르고 고독하기 쉬운 말년에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흐뭇하고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박찬효
FDA 약품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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