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훌륭히 자란 어느 먼 훗날, 난 이 노트의 한 모퉁이에서 늙어져버린 내가 꿈 많던 소녀때의 나를 바라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의심이 된다. 그 후일의 미소가 결코 싸늘하고 콧등 시큰하게 만들지 않고 온화한 얼굴 위에 떠오는 정겨운 웃음이길 기대하면서 이 글을 쓴다….(이하 중략)”
위의 글은 1969년 1월 30일에 쓴 나의 일기 중의 일부분이다. 언젠가 나이 든 내가 이 글을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는 걸 염두에 두고서 쓴 글이었다. 계속되는 내용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해의 새해 포부 내지는 인생 계획표인듯 어느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 후 어떤 직업에 종사할거며, 직장생활 몇년 후엔 해외 유학을 꿈 꾸었고, 결혼에 대한 의견도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밝혀 놓고 있었다.
작년 4월 부활절에 아버지를 잃고 한국에서 돌아올 때 부모님 짐을 정리하셨던 셋째오빠께서 ‘아마도 네 일기장인것 같더라’ 하시면서 색바랜 10여권의 공책을 전해 주셨다. 그제서야 고등학교, 대학교때 간간히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났으며 미국에 올때 짐이 너무 많아 부모님 집에 두고 오면서 다음에 와서 꼭 가져가야지 했던 생각이 났다. 부모님께서는 그동안 몇차례 집을 옮기셨는데도 어느 상자 속에서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전반의 낭만과 외로움이, 설레임과 아우성이 그대로 침묵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난 순간 가슴이 찡해옴을 느꼈다. 기억에서조차 잊혀졌던 나의 젊은 넋두리들은 40여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되찾은 나의 40여년 전의 순간들은 보배인양 다시 상자 속에 담겨져 나의 손길을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유인즉,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40여년 전의 기억속으로 함부로 뛰어들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나름대로의 어떤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나만의 장소와 시간이 마련되어야하고, 70년대의 음악이 흘러야하고, 당시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우선 내가 나의 10대의 향수 속에 젖어든 상태에서 일기를 펼치고 싶었다.
나름대로의 절차 속에서 열린 일기장은 그동안 글씨체도 여러번 바뀌었으며 때론 일기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전혀 낯설고 사건도 도무지 연결이 안 되는가 하면, 글 내용이 너무 유치하기도 하고 또는 글 내용이 너무 멋있어서, 이게 과연 나의 기록인가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나에겐 ‘현’이라는 상상의 남자친구가 있었고 큰 오빠의 결혼식장에선 새언니가 생기는 기쁨보다는 오빠를 빼앗겼다는 슬픔에 젖어서 하루종일 삐져있었던 일, 친구랑 헤어지기 싫어서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면 친구는 다시 나를 바래다 주면서 나누었던 사연들 앞에서 어찌 아련한 그리움이 솟지 않겠는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서로 잊고 있었던, 어쩌면 이제까지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석류알 같은 우리의 사연들을 한알씩 한알씩 나누어 갖고 싶다.
나이들어 가면서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두고온 사람들에 대한 애절함이 때론 견디기 힘들어지는 날들이 잦아지는 요즈음에 나의 일기장은 그야말로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뭔가 일이 뒤틀려 마음이 불안할 때나 아이들에게 엄마도 젊은 날이 있었다고 얘기해 주고 싶을때,그리고 눈물이 말라가고 웃음이 없어질 때 난 이제 찾아 가서 젊음의 설레임과 당당함, 상대없는 분노와 용기를 엿볼 수 있는 나만의 ‘마음의 방’이 생긴 셈이다.
이제 59세의 난 17세에 설계했던 삶과는 한참이나 멀리 비켜 서 있지만 온화한 얼굴위에 정겨운 미소를 지우며 나의 ‘되찾은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