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처와 비서 공모 회삿돈 1,300억원 횡령

2012-03-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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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권 있는 세 자매 한 푼도 못 받아

첫 번째 부인 딸들 위해 4년여 법정 투쟁

“아버지 위해서라도 진실 밝힐 것”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할 뿐입니다.”

베이지역 출신의 세 딸들은 지난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선박업체 회장 비서와 후처가 공모한 1,300억 횡령 사건의 피해자이다.

현재 36, 38, 40세인 세 자매는 선박회사 회장으로 지난 2007년 6월 사망한 김모(당시 75세)씨의 이혼한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난 딸들이다.

상속권이 있는 세 딸은 유산과 회사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비서 김모(49)씨와 후처 김모(48)씨를 고소한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배성범)에 따르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등을 거점으로 하는 H선박회사를 운영하던 김모 회장이 2001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치매 증세를 보이자 비서 김모씨와 후처가 공모해 1,300억원대 달하는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작년 6월 김 회장의 비서였던 김씨를 먼저 구속했고 후처가 공모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 지난 8월 후처 김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상태다.
후처 김씨는 2001년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치매 증세를 보이자 비서와 짜고 예금 인출 서명권자를 본인 명의로 바꿔치기 했다.
이들은 하나은행 홍콩 지점 등에 김 회장이 회사 명의로 2개의 예금계좌가 있는 것을 알고 인출하는 수법으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4년간 1억1,500만달러(약 1,330억원)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후처 김씨가 빼돌린 돈 가운데 8,500만달러를 챙겼으며, 비서 김씨가 3,000만달러를 가지고 몽골에서 부동산 개발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 김씨는 빼돌린 돈으로 몽골 한인상공인회장, 몽골 한인회 부회장, 호텔·부동산 개발사 대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몽골 자문관 등을 역임하며 화려한 생활을 했다.
김씨는 호텔·부동산 개발업체를 운영하며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최고층(25층·높이 105m) 빌딩 건축 시행을 맡는 등 몽골 한인사회에서 능력 있는 기업인으로 알려졌다.


후처 김씨도 이 돈을 스위스 등 외국의 여러 은행 계좌로 나눠 예치했지만, 2007년 6월 김 회장 사망 이후 재산 상속권을 갖게 된 김 회장 전처의 딸들이 걸림돌이었다. 김 회장 재산의 상속권자는 전처소생의 딸 3명과 후처, 후처 아들 등 총 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 자매에 따르면 “어머니와 이후 한 후에도 여름과 겨울 방학 등 1년에 두 차례씩 한국에 오도록 비행기표를 보내주셨다”며 “아버지로써 무척이나 잘해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후처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대문도 열어주지 않는 등 우리가 한국에 갔을 때 못 만나도록 막기 시작했다”면서 “주변의 지인까지 만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등 철저히 통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2007년 김 회장이 사망하고 재산 분배 과정에서 김씨 등의 연락이 없자 딸들은 직접 찾아가 재산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비서 김씨가 1억1,500달러 전부를 빼돌린 줄 알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고소당하기 직전인 2007년 8월 돌연 몽골로 출국했고, 김씨의 딸들은 2009년에야 후처 명의로 1억달러대의 예금이 인출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같은 사실은 2007년부터 2011년 6월까지 3년10개월 동안 한국에서 머물면서 증거를 수집한 세 자매의 모친 김씨에 의해 밝혀졌고, 고소 사건을 맡은 검찰이 비서 김씨를 지난 5월 몽골로 직접 가서 연행해 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가 빼간 예금액 1억1,500만달러 중 사업에 쓴 약 3000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8500만달러의 행방을 추적하던 중 후처가 개입돼 사실을 알게 돼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뇌경색으로 전남편의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상태에서 서류를 꾸미고 예금 인출 서명권자를 본인 명의로 돌려놨다”며 “미국에 살고 있어서 한국 사정을 모르는 딸들을 위해서라도 물러날 수 없다”고 말했다.

세 자매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수소문 끝에 병원에서 투석하시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며 “본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나 의사 표시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4년 반이라는 긴 법정 싸움 때문에 많은 비용을 사용해 재정적으로 힘든 상태”라며 “그러나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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