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한 평생은 오르고 내리는 여러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다. 열정적으로 일하며 성공의 길로 치닫는 상승의 선이 있는가 하면 의기소침한 하강의 선도 있다.
그런데 그 오르고 내리는 선에는 수많은 고비와 마디가 있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다. 고비마다 마디마다 현명한 처신이 요구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본인 자신의 숙제이다.
얼마 전 가수 패티 김의 은퇴발표 기자 회견을 뉴스로 보았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아름다운 노을처럼 자신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남기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빠졌다. 참으로 큰 그릇이구나 싶었다.
나는 패티 김이란 가수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그녀의 노래가 좋아 늘 즐겨 들으며 행복해 했다.
사람이 출처진퇴를 결단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자리를 얻기 보다 더 힘든 건 그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다. 자리를 얻기 위해선 전심전력 노력하면 될 수도 있지만 물러난다는 것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력 그리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은퇴란 말이 쉽지, 어려운 결단이다. 높은 자리일수록 더욱 물러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 위대한 것이다.
늦게까지 눌러 앉았다가 욕 되게 밀려나는 사람도 있고, 은퇴선언 후, 다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누군들 물러나기를 좋아하랴만, 언젠가는 물러나야할 자리라면 문제는 타이밍이다.
인생의 길잡이는 자기 자신이기에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던 그건 자신이 판단하고 결심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컨디션을 잘 읽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박수칠 때 떠나라는 충고의 말도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패티 김의 뒷모습은 예술적 고뇌, 삶에 대한 겸허함, 노래에 대한 집중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뒷모습은 진정한 최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웅변해 준다. 떠나는 뒷모습이야말로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며 성숙도일 것이다.
물러나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결코 과거만이 아닌 미래가 들어 있을 것이다. 등 굽은 아버지의 뒷모습 속에 어깨 핀 자녀들의 미래가 있듯이 패티 김의 뒷모습에 젊은 음악인들의 미래가 이어 질것이다.
태양처럼 뜨겁게 정렬적인 그녀의 노래인생은 이제 노을처럼 아름답게 팬들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이별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인생이란 것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일까.
김영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