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생각하는 효

2012-03-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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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처음 이민 와서 나의 남편은 매일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새벽마다 도서관으로 향하던 남편이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역시 미국은 망하지 않을 거야. 미국이 부강하는 이유를 알았어.”

큰 도서관을 꽉 매운 사람들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라는 것이었다. 도서관에는 노인도 있고, 임신부도 있고, 아기를 소쿠리에 담아 안고 온 젊은 엄마도 있다고 했다. 젊은 엄마가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살면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아기가 울면 밖에 나가 달래가며 공부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얼마 전 시아버님이 몸져누우셨다. 백세를 넘기며 건강하시던 분이 요즈음은 병원과 양로병원을 오락가락 하며 지내신다. 번갈아 가며 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 것이 가족들의 일과처럼 되었다. 아버님이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고 나름대로 정성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 하던 어느 날이었다. 양로병원 측 배려로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큰 식당에서 테이블 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식사를 하는데, 문득 한 정겨운 광경이 눈길을 끌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유난히 다정하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음식을 떠먹여 드리고, 어머니 얼굴에 묻은 음식을 닦아 드리며 귀중한 보물 다루듯 어머니를 어루만져 드렸다. 그런 그 남성의 옆모습에서 향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양로병원 직원에게 물으니, 50대의 그 중년남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 식사 때 마다 와서 어머니 시중을 들어드린다는 것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편히 앉혀 양지 바른 곳으로 모셔가서 조용히 쉬게 해 드리고는 바삐 직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세월을 말이다.

요즘 세상에 참으로 훌륭한 분도 있구나 감격 하며, 나는 뒤통수를 한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시아버님 간병에 정성을 다 했다고 자부하던 나 자신을 떠올리니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의 생각과 행동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 돌아가시면 3년을 산소 옆에서 생활하며 효를 실천했다. 시대적인 조건상 그런 효도는 무리이지만 부모를 모시는 마음의 자세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자식이 어머니를 죽였다느니 하는 있을 수도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무참한 패륜은 극소수의 사건이고, 저 숨은 곳,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선행과 부모를 섬기는 효가 살아있다고 믿는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미국이 부강하듯, 부모를 잘 모시는 모범적인 자녀들이 많아야 우리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양로병원의 중년남성같은 효자들이 많아야 우리 한인사회의 미래가 아름답게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에바 오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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