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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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남자

2012-02-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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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간 잡지를 보다가 좀 색다른 느낌이 드는 제목이 있어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같이 살아 보고 싶은 사람’. 여론 조사를 분석 내용이었다.

우선 ‘여자가 같이 살아보고 싶은 남자 상’ 1위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남자였다. 처음 읽었을 때는 “세상이 하도 어지러우니 여자들도 욕심 없이 그저 소박한 마음들이구나” 하며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뭔가 개운치 않았다. 이것저것을 생각하다가 내 눈이 ‘지극히 평범하지만’에 다시 닿았다. ‘평범하다’는 말은 그저 이름 없이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도 없이 큰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 하는 말로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지극히 평범한’ 이라는 말에는 내가 모르는 더 깊은 뜻이 있는 듯하여 “어떤 사람이 한국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나?” 하고 찾아보았다.

우선 여성들의 의견이 궁금하여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그들에게 평범한 남자는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96%), 신장이 180cm는 돼야 하고(49%), 최소 전셋집은 있어야 하고(55%), 연봉이 5,000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응답이었다.

한국을 떠나 온지가 40년 넘었으니 이런 수치가 마음에 선뜻 다가 올 리가 없다.

남편이 첫 봉급을 받았다고 으쓱대며 월급봉투를 주기에 펼쳐보니 6,300원이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을 들고 들어오는 남편은 한없이 밝은 표정이었고 그것을 받아 세어보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뛰었다. 그때 행복해하던 심장의 박동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여성 상위 시대를 외친다. 그러니 당연히 남성들의 여성 의존도 또한 높아간다. 미혼 남성 62%가 집을 소유했거나 전세 사는 여성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무엇이든 너무 빠른 변화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결국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며 자아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잡지에 의하면 한국의 여성들은 이렇게 외친다.
“우울 할 때 꽃 한 다발 내밀며 나를 위로해 주는 남자,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주고, 실수는 말없이 눈감아주고 살며시 손만 잡고 자도 행복해 하는 남자, 떡볶이를 사들고 퇴근하는 남자, 아내를 위해 아침 식사를 차려 놓고 나가는 남자, 젓가락질 못하는 나를 위해 식당에서 포크 없습니까? 하고 물어봐 주는 남자, 한 달에 하루는 나에게 휴가를 줄 수 있는 남자, 영화나 책 내용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남자”

이런 남자라야 현대 한국 여성들에게 지극히 평범한 남자요, 이런 남자라야 한국 보통 여자들에게 통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 이민1세 여성들도 알고 살아가면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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