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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이름 기억하기

2012-02-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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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혜 교사(뉴욕한인교사회 공동회장)

필자는 뉴욕시 공립학교에서 17년 넘게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평균 80명에서 150명 이상의 새로운 학생을 만나게 된다. 학생을 매일 한 번씩 보게 되는 학급이 대부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주일에 두 번 또는 한 번만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학년 초가 되면 학생들의 이름을 되도록 빨리 외우는 것이 교사로서는 가장 큰 일과의 하나다. 우선은 출석 점검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특히 뉴욕시 공립학교 학급은 다민족으로 이뤄져 있어서 그 이름이 천차만별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동서국제학학교(EWSIS)에는 중국 학생이 많은데 이름을 부르기도, 외우기도 어렵다. 그 이름들도 참 가지각색이어서 중국계는 시아우리, 잉신, 신잉, 자이아오야오, 시후아, 슈얀, 이융, 유링 등이 있는가하면 그리스나 동남아 지역 출신의 이름은 글자가 길어서 어떤 때는 글자가 20자나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히스패닉계통의 서반아어 이름들은 통상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스펠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금방 외워지는 이름이라도 철자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그것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쟈니’의 철자는 영어식의 ‘Johnny’가 아니라 ‘Jhonny’라고 써야 하는 경우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것을 떠나서 그 이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WSIS 학교에는 한인 교사가 두 명 있는데 간혹 학생이 필자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미세스 리’가 아닌 ‘미세스 김’으로 순간적으로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미안해서 금방 수정해서 다시 부르지만 그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는 ‘아니, 이 녀석이 나보다 김 선생님을 더 좋아하는 것 아냐?’라는 장난스런 생각도 스치게 된다. 하물며 선생이 자기 이름을 몰라 우물거린다거나 다른 이름으로 불러버리면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신의 존재가 미미하다는 서운함이 스칠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필자의 수업을 듣고 있지도 않은 학생인데 ‘너의 이름이 누구누구이지“?’라고 하면 얼굴이 금방 환해지는 것을 보곤 한다. 혹자는 말했다. 이름은 자신의 귀를 울리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학생의 장점이나 특징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표시다. 교사의 직업이 중요한 이유는 교과 과정도 잘 가르쳐야 하겠지만 학생과의 건강한 인관관계
(Relationship)를 잘 형성해 가도록 돕는 것이야 말로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종종 좋은 가정에서 푸근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대인관계가 한층 원만하고 남을 넉넉하게 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교사와 흐뭇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은 학생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좋았던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고, 자신도 무의식중에 남에게도 똑같이 하더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고 있다.그래서 필자는 내 자신에게도 말한다. 되도록이면 학새들의 이름을 두 번, 세 번 묻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다고.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라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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