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라이프찌히 선교 컨퍼런스 지상 중계/

2012-02-2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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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가 열릴 때까지…”

‘게르다 에얼리히’여사
북한대사관서 3년째 시위

구 동독 라이프찌히에서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그날까지 선교연합(UTD)’ 주최로 열린 선교 컨퍼런스의 첫 강사는 70대 할머니 ‘게르다 에얼리히‘ 여사였다. 그는 베를린 소재 북한대사관에서 2년 넘게 북한 자유화를 위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섯 살 때 이웃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그는 수출입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1988년 11월9일 베를린에서 열린 촛불 평화 시위에 참여하면서부터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변했다.
베를린 소재 북한대사관 앞 시위는 2009년 븍한 선교단체 ‘오픈 도어스’의 보고를 듣고 난 뒤부터. 그후 한 주도 빠짐 없이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 시위를 하고 있는 그는 “동독 치하에서 단지 비밀경찰의 감시를 피하는 정도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더 큰 일을 하셨다”며 “우리 모두가 한반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오픈도어스 선교회를 만난 후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주셨다. 어떻게, 언제, 무엇을... 북한대사관이 생각났다. 생각이 났을 때 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고 열정이 식기 때문에 2009년 11월에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한 명이 시위에 동참했고 지금은 8명이 한 팀이 되어 시위를 하고 있다. 30-40명의 기도 후원자, 이메일과 재정으로 후원해주는 분들도 생겼다. ‘기독교인을 핍박하지 말라’ ‘수용소를 폐지해라’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 줘라’ 등이 요구 사항들이다. 8명의 광신자가 아니라 세계가 시위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28년간 북한 강제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 탈출한 여인이 와서 함께 시위를 했다. 이후 한국 사람도 이 시위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언론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연금을 받는 노약한 사람들일 뿐이다. 지난 11월엔 북한 대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헛수고”라고 하더라. 우리는 왜 우리가 여기에 서있는지 말해줬다. 당신의 민족을 위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서 있는다고. 시위가 끝나면 대사관 앞 두 개의 우체통에 기독교 서적, 팜플렛, 경고 편지 등을 넣어두고 온다. 이것들을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대사관 직원들은 읽지 않겠나 생각한다.
12월17일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시위를 했더니 “조기가 안보이냐”고 따지길래 “우리는 사랑으로 왔다. 그러나 진리를 말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동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도 밝혔다. (이후 질의 응답 시간에 에얼리히 여사는 과거 동독의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교회에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
동독도 크리스천에게는 어려운 나라였다. 1972년부터 외국에 나가는 것이 금지됐다. 당시에도 난 크리스천 청소년들과 같이 일했다. 1988년 11월9일 회개의 기도를 위해 모였다. 1938년 11월9일은 유대인을 크게 박해하는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기도 모임 이후 사람들은 정부를 조심스럽게 비판하기 시작했고 1989년 9월부터는 베를린 겟세마네교회에서 매일 저녁 5시에 모였다. 처음에는 30여명이었는데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정부를 비판할 때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밝히게 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비밀 경찰은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우리 무기는 기도와 정직(진리), 그리고 비폭력이었다. 그해 10월 6일부터 8일 사이에 연행돼 고문 받은 사람도 있었는데 나중에 협상해 풀려나기도 했다.
통일이 된 후 과거 동독 시절이 좋았었다는 사람이 있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독일이 현재 자유 복지 사회가 된 것 자체가 신앙에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껏 선교할 수 있게 됐으니 큰 유익이 아닌가?
한국교회는 기도해야 한다. 지칠 때도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안식을 주신다. 독일처럼 한꺼번에 문이 열릴 수도 있고 조금씩 될 수도 있다. 독일 통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믿는다. 불평하는 사람은 늘 불평할 것이다. 이 땅은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기 때문에 수용소에 갇히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정리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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