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우헌

2012-02-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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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옛 궁전 자금성 안에는 삼우헌이란 건물 한 채가 있다. 명나라 때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선조가 당대의 최고 건축가인 괴상이라는 사람을 시켜 지은 자금성은 불후의 건축물로 지금까지 세계에 알려져 있는 궁궐이다.

괴상은 자금성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져 있는 천안문이라든가 북경고궁, 아름답기로 유명한 오문을 비롯하여 소주나 북경에 고관들의 집도 여러 채 지어 주어주었다. 그런데 자금성이란 유명한 궁궐 안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삼우헌이란 한 채의 건물을 지어 놓았는데 그 건물을 바라보면 친구란 무엇이가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다보면 오다가다 아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아는 사람들 중에는 친구가 되어 긴 세월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란 반드시 좋은 사이가 되어야 하고 끝까지 좋은 사이로 남아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이가 변질이 되어 세 친구로 남게 된다.


세 친구란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친구, 있으나 마나 한 친구, 차라리 처음부터 없어야 할 친구. 이런 세 종류의 친구들을 누구나 눈앞에 두고 세상을 산다.
좋은 친구는 마음에서 항상 그립고, 있으나 마나 한 친구는 얼굴을 보아야 있나보다 하다가 헤어지면 잊어버리고 마는 친구고, 차라리 없어야 할 친구란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 이간질을 일삼는 사람이거나 결국에 가서는 배반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유를 달아 배반하는 성경 속의 유다와 같은 친구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친구, 예수님은 이런 자를 두고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좋은 친구는 흙과 같은 사람이다. 험한 인생살이에 바람이 거세게 불면 벽이 되어주고, 비가 내리거나 찬 눈이 내리면 지붕이 되어 주면서 외로운 인생길에 무한한 위안이 되어 준다.

무엇이 좋은 친구로 맺어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는 이해관계가 없는 우정뿐이니 전생으로 부터의 좋은 인연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것도 부부가 되는 경우처럼 천생연분이라고나 할까.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도 꼭 있어주어야만 하는 형제가 있는가 하면 있으나 마나 한 형제도 있고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형제도 있다. 고마움을 모르는 형제는 차라리 없었으면 마음이 편한데 형제라는 이름으로 달려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친구란 사귀기는 쉽지만 어떤 종류의 친구가 되어 남을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판독이 된다. 좋은 친구는 여름날의 뭉개구름처럼 마음을 부풀리게 하면서 어려운 세상살이 속에서도 뜨게 한다. 그래서 좋은 친구는 힘이다. 좋은 친구는 등대불이다. 좋은 친구는 침울할 때, 힘이 들 때 길을 밝혀준다. 좋은 친구는 의리를 지킨다.

미국형의 친구와 한국형의 친구는 다르다. 미국형의 친구는 외적인 관계이고 한국형의 친구는 내적인 관계다. 미국형의 친구는 좋은 친구이던 그렇지 않은 친구이던 외관상 지극히 친절하면서도 실리를 잃지 않는 견제적 현실주의자들이고, 한국형의 친구는 표정 없이 내적으로 두께를 넓혀간다.


김윤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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