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땅끝은 곧 시작을 의미”

2012-02-12 (일) 12:00:00
크게 작게
인간적으로 하나님이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 분을 잘 몰라서 나오는 푸념이고 원망이지만 신앙인들에게 의심과 좌절감은 막을 수 없는 파도처럼 자주 밀려온다. 해남에 세워지는 ‘땅끝 미국타운’ 건설 프로젝트의 미국 책임자인 이길중 목사가 2010년 말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올 때 심정이 그랬다. 무안에 세우려 했던 미주 한인 은퇴촌의 꿈은 무너져 버렸다. 주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바닥나 있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굶고 있더라구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요. 돈을 어디서 잠시 빌리지도 못하느냐는 핀잔에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아내는 ‘100달러도 갚을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꾸느냐’고 답변하더군요.”
이 목사는 고향 마을인 무안에 미주 한인들이 돌아가 사는 커뮤니티를 조성하려 했었다. 단순히 은퇴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비전을 심어주며 나아가 한국교회를 재건하자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2006년에 시작된 그 프로젝트는 워싱턴 한인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고 처음에는 잘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복병이 너무 많았다. 무안군으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은 6만평 대지를 구입하기 위해 공동 투자자를 모았다. 하지만 형질을 변경하는데 2년이 걸렸다. 도대체 이곳에 미국에서 올 사람이 있겠느냐며 은행은 대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공사에 관심을 보였던 중소 건설업자들은 다 손을 들고 말았다.
“한국서 그 무더운 여름에 옥탑방에 기거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면서. 너무 힘들어 이대로 목숨을 거둬가 달라는 기도를 수도 없이 드렸지요.”
결국 일은 성사가 안됐다. 2010년 12월29일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개인 재산만 50만달러 이상을 소진했고 크레딧 빚도 쌓여 있었다.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선정남 사모)의 수입은 개스비만 제외하고 전부 이자 갚는데 썼다. 마음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아내의 얼굴은 시커멓게 타 있었고 부어 있었다. 서둘러 소셜 보조금 신청을 했다. 35년간 미국에 살면서 모았던 모든 걸 하나님은 가져가셨다. 티셔츠를 팔며 돈이 아까워 핫도그 하나 안 사먹었었다.
“아내와 저 몸 둘만 남았습니다. 건강은 챙겨 주신 셈이지요. 미국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해서 인도에 계신 선교사님에게 가서 사역을 도울까, 북한선교를 하는 분을 도울까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 때가 작년 6월. 갑자기 해남군에서 전화가 왔다. 이 목사가 무안에서 하려 했던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땅은 준비됐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땅 위에 실제로 ‘미국 타운’을 건설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인데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부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오는 4월 첫 삽을 뜨게 된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작년 여름입니다. 아내가 시장 갈 생각을 안하는 거예요. 언제 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물론 갈 돈이 없기 때문이었죠.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게 전혀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남들에게는 전혀 굶는 내색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지난 5년 간 이 목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유인 작전 때문이다. 포기하려고 하면 사인을 주셨다. 평소 방언을 잘 못하는데 절망에 빠져 새벽기도를 하다 보면 방언이 나왔다. 그런 미끼(?)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목사는 채권자가 술에 취해 월남 회칼을 들고 돈을 안돌려주면 죽인다며 위협하던 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저를 살려놓으셨으니 의미 없이 고통을 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땡깡 부리지도 않고 다 맡겨버렸습니다. 알아서 하시겠지요.”
미국에 와 국방부 등에서 회계 전문가로 일했던 그는 부름을 받은 후 포도원교회에서 부목으로 있었고 지금은 메시야교회 전도목사로 섬기고 있다.
“아내 고생 그만시키라고 말하는 사람은 상종을 안하려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있어야지요. 해남 ‘땅끝 미국타운’은 한국교회를 살리고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일입니다. 땅끝은 곧 시작을 의미합니다.”
땅끝 미국타운 워싱턴 설명회는 3월27일(화) 오후 7시30분 메시야장로교회에서 열린다.
문의 (703)340-6500
<이병한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