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삶

2012-02-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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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환상 중에 지옥을 갔다 왔다. 그런데 그 곳에는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이 훌륭한 식탁을 앞에다 두고 멀거니 앉아 있었다.
“왜 먹지 못하고 있을까?” 자세히 보니 그들은 손을 굽힐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음식을 자기 입에 가져갈 수가 없어서 먹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도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 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이번에는 천국에 가보았다. 그곳도 매우 식탁이 훌륭하였다. 살이 포동포동한 사람들이 웃으면서 따뜻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 굽힐 수 없는 손으로 마주 앉아 있는 친구들에게 서로 먹여 주며 즐거워하며 지내고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루소의 말이 생각난다. 삶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며 수많은 관계의 연속이다. 나와 너로 이어지는 관계망 속에서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희망과 좌절 등 숱한 감정의 부침(浮沈)을 매 순간 거듭하며 살아간다.
피할 수 없는 인간과의 관계를 어떤 모습으로 조화롭게 가꿔가야 하는 것은 일생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조화롭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과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과 조건을 이리저리 따져서 자신을 어둡고 음습한 곳에 자리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거부하는 습관도 있다.
이것은 자신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와의 끝없는 불화와 갈등, 분열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다양한 빛깔과 향기를 지닌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자존심은 위선적인 자만이나 허세가 아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소중함도 알고 배려할 줄도 안다는 것 아닐까.
논어(論語)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같아지기를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도 비굴하게 남과 같아지려 하지 않으려 함이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조화로운 관계 맺기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자신만의 견고한 아집의 울타리를 고수하며 생각이 다른 타인들을 배척하고 거부하고서는 타협과 조정의 화음은 기대하기 어렵다.
남을 탓하기 보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돌아보며 자신의 내면을 풍요롭게 가꾸고 이웃들과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삶의 지혜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민정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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