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멀리 멀리 떠나고 싶다

2012-02-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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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멀리 떠나고 싶다! 노인들이 마음에도 없이 되뇌이는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우회적인 표현이 아니다.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가보고 싶다는 현실적인 여행의 욕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하늘 길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바닷길은 여객선 대치에 서서 해풍을 쏘이면서, 철길은 기차 창가에 팔고이고 앉아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잘 뚫린 하이웨이를 관광버스의 한 구석 좌석에 기대앉아서 떠나고 싶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 중반, 당시만 해도 해외 나들이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가족을 거느리고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샌프란시스코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풍요의 나라인 미국으로의 이주였지 관광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 전인 1963년부터 4년에 걸쳐 어린이 연극단원과 학부모들을 인솔하여 일본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공연하면서 여러 명승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건 공연이 없는 날 틈을 내어 관광한 것이지, 관광을 위한 관광이 아니었다. 미국 이민 이후에도 어린이 연기자와 학부형들과 함께 5차례에 걸쳐 해외공연을 했지만 이 또한 공연을 위한 해외 나들이일 뿐이었다.

미국에서 산 수십년동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족들과 미국 내 명소는 물론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창단한 극단의 연극 연습과 공연에 매달리느라 그럴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한국 방문 때마다 친지들이 미국, 남미, 심지어는 아프리카 오지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 유럽은 고사하고 미국의 관광명소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나는 주눅 든 모습을 하게 된다.

오늘도 TV로 내가 즐겨 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미지의 나라 풍경이 가슴에 유혹의 불을 지른다.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그 언덕배기에 동화 속의 집들 마냥 색색가지 지붕의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그 언덕 아래의 오솔길을 저녁 노을빛을 맞으며 걸어가는 관광객들 속에 나도 끼어들고 싶다. 그리고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도 보고 싶다. 또 네덜란드의 바람개비 풍차도 보고 싶다.

극작가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햄릿’ ‘오세로’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 같은 불후의 희곡을 남긴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생가에 가보고 그의 성장배경을 알아보고 싶다. 또한 영국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그린 희곡 ‘바다로 가는 기사’를 쓴 아일랜드의 존 싱의 생가도 말이다. 그리하여 러시아로 발길을 옮겨 ‘시구창’ 이란 유명 희곡을 쓴 막심 고르키, 가깝게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를 쓴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태어난 마을도 가보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어쩌면 혼자만의 넋두리에 불과 할 것 같다. 노후한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듯, 노구의 내 몸은 이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작동이 되지 않는 컨디션에 놓여져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멀리 멀리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만 가슴에 담은 채 또 하루의 하얀 날을 보내고 있다.


주 평/ 아동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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