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⑬자폐를 알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2012-02-06 (월)
변성희(뉴커머스 고교 교사)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로서 에반이의 자폐사실을 모르는 일반인이 있는 공공장소에 섞이는 일만큼 큰 모험은 없다. 에반이와 첫 대면을 한 이들은 하나같이 ‘에반이에게 자폐가 있는 걸 모르겠어요’라고 할 만큼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장애가 바로 자폐다. 그렇기에 남들의 눈총을 살만할 행동을 보이는 에반이와 함께 공공장소에 있을 때는 에반이의 장애사실을 차분하게 알림으로써 자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순간이 있는가하면 장애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폐가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동정심 유발을 자제할 때가 있기도 하다.
최근 주말을 이용해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바로 이 여행길에서 자폐를 알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 있어 그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한다.당시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2시간이나 탑승구를 열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안 그래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에반이를 가까스로 조용히 앉혀서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2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에반으로서는 ‘미션 임파서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에반이를 알기에 나는 에반이를 가장 한가한 대기실 구석으로 데려갔다. 가자마자 대기실 끝과 끝을 쌩하고 달려 나가기를 반복하는 에반. 그런 에반이를 보는 곱지 않은 눈이 있었으니 신문을 보고 있던 한 중년여성이었다. 에반이가 직접적으로 그녀에게 달려가거나 부딪힌 것이 아니었는데도 계속 뛰어다니며 주위를 계속 돌아보는 에반이가 영 못마땅한 듯 보였다. 그러다가 그녀 앞에서 에반이가 보기 좋게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닌가! 그랬더니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신문을 딱 내리더니 ‘바로 이래서 애가 뛰면 안된다니까. 애가 다치는 걸 걱정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일침을 놓았다.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 아들이 뛰는 것이 방해가 되시는가요? 그렇다면 저희가 장소를 옮기겠습니다." 그녀는 "방해가 되지는 않아요. 단지 아이가 다칠까 걱정돼서 그러는 것 뿐 이에요"라고 답했다.
하여 "그러면 제가 엄마로서 계속 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저희 아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자폐가 있습니다. 큰 불편이 안 되신다면 아이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해주시겠어요?"라고 했더니 당황한 눈빛이 역력했다. 에반이가 자기 능력으로 도저히 통제되지 않은 부분이 일반인의 이목을 끌 경우에는 아이의 자폐 사실을 차분하게 밝히는 것이 편하다. 곱지 않는 일반인의 참견이 기분 좋을리는 없으나 보이는 장애가 아닌 자폐라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알리가 없으니 감정적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럴 때는 엄마로서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차근하게 자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자폐라는 사실이 에반이를 위한 변명처럼 항상 따라붙게 되면 아이를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일반인이 인식하게 할 수도 있기에 자폐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을 때가 오기도 한다.
자폐의 증상 중 하나인 상동행동으로 열심히 대기실에서 뛰기를 반복한 후 비행기에 오른 에반이는 고맙게도 고분고분하게 앉아 있다가 여러 번 큰 재채기를 했다. 에반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나는 미처 에반이에게 입을 가리고 재채기를 하게끔 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중 뒤에서 한마디가 따끔하게 들려온다. "거참, 이거 세 번째입니다. 애가 기침을 하면 좀 입을 가리던지 하지. 원~" 물론 즐겁지만은 않은 불평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서 ‘죄송합니다’라고 간단히 말했을 뿐 에반이의 자폐 사실을 꺼내지 않았다. 에반이가 자기통제가 힘들어 한곳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대기실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닐 수밖에 없었던 반면 기침이 나면 입을 가리는 것은 배워서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에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반이의 장애사실을 굳이 들먹이면
서 ‘자폐가 있으니 좀 이해를 해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에반이가 일반인과 대등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자폐라는 방패로 무조건 감싸기보다는 에반이의 잘못과 실수에 따르는 남들의 눈총과 불평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절대적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에반이는 내가 없이도 그렇게 혼자서 에반이의 ‘다름’을 배려해주면서도 그만의 능력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