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품 파는 박흥보

2012-02-0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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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로리 차 한 대 가지고 대기업에 지입차로 생계를 유지하던 유씨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쫓겨나자 회사 앞에서 내 밥그릇 달라고 1인 시위를 했다.
사장이 그 차를 5천만원에 되사주겠다고 회사로 불러내서 회사 임직원 7~8명이 보는 앞에서 알루미늄 야구배트로 ‘한 대에 100만원’씩 10여 차례 구타했다.
안 맞으려고 발버둥을 치자 ‘지금부터는 한대에 300만원’이라며 세 대를 더 때리고 2천만원을 현장에서 쥐어주었던 재벌그룹회장 사촌동생 사장이 구속되었던 일이 2011년 여름에 있었다.
꾸며낸 이야기 같던 이 뉴스를 처음 듣는 순간 가슴이 써늘하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무슨 이런 기괴한 일이 있나, 현장에 있었던 회사 간부의 “2천만원어치를 덜 맞았고, 돈을 더 받기 위해 유씨가 더 맞은 부분도 있었다”는 증언에 이르자, 이 사건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운봉 사는 이야기 속의 박흥보가 떠올랐다.
박흥보는 원래 그렇게 가난하지가 않았다. 낳을 만하니까 자식을 열아홉을 두었지만 장자 상속제도라는 사회현상 때문에 한 순간에 거리로 내몰리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없는 집구석에 제사만 많더라고 자식들이 많으니 먹을 것에 더 껄떡대는데, 얼마나 떡을 먹고 싶었으면 이렇게 했을까.
“흥보 마누라 가난에 찌들어 신세자탄 울고 있을 적에, 열일곱째 아들놈이 유혈이 낭자하여 울고 들어오며, 어머니 나 송편 세 개만 해주시오. 아니 이 자식아 떡은 왜 세 개만 해 달라느냐. 동리로 놀러갔다 애들이 송편을 먹기에 좀 달랬더니 황토에다 오줌을 누어 황토 송편을 만들어 주며 이 떡을 다 먹으면 참떡을 주마 허기에, 황토 송편을 다 먹어도 참송편은 아니주고 뭇놈들이 늘어서서 가랑이 속으로 기어 나오면 송편을 주마기로 송편 얻어먹을 욕심으로 엎어져 기어 나갈 적에, 뒤엣놈 떨어져 앞에 나가서고 담담놈 떨어져 앞에 나가서고 허니 한정 없이 기어나가자니 무릎이 헤지고 유혈이 낭자하여 내가 욕을 좀 하였더니 송편은 고사하고 직사하게 뺨만 맞고 보니 송편 세 개만 주면 하나는 입에 물고 양손에 송편 하나씩 들고 조롱하고 싶나이다.”
이런 찢어진 가난을 흥보라고 몰랐을까, 환자 한 섬 얻으러 관가에 나갔다가 빌려 줬다하면 돈 받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매품팔이를 제안하는 아전에게서 우선 마삯으로 받은 다섯 냥을 가지고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떡국과 막걸리부터 한 잔 마시고 나서 거나해지자 모처럼만에 집안의 가장으로서 큰 소리를 떵떵거리는 것이 어깨 힘 빠진 오늘날의 가장들과도 너무나 흡사해서 놀랍다.
장탄식을 하면서 매 맞으러 감옥엘 가보니 그런 사람이 여럿 있는 걸 보고는, 한편으로 안도도 해 보지만 매 맞다가 죽을까봐 식겁해 하고 있는데 옆집 꾀돌이가 흥보 몫의 매를 먼저 맞고 서른 냥을 타가지고 가버렸으니 이 노릇을 또 어찌 할꼬.
매품 파는 것도 공급이 넘칠 만큼 각박한 서민들의 삶,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흥보는 부러진 제비다리 덕분에 팔자가 늘어지는데 어디까지나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날 눈에 띄지 않는 삭막한 현실이 흥보가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돈 때문에 잠 못 이뤄 보고, 의리 상해보고, 이혼을 겪어 본 사람들은 안다.
돈에 관한 어쭙잖은 이중적 가치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매 한 대에 1천불, 때릴 수 있는 자와 맞을 수 있는 자’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몇 사람이 태연자약해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소름마저 끼친다.
‘박타령’이라고 달리 불리기도 했던 ‘흥보가’는 가족위주의 사회에서 상업주의로 바뀌어가는 조선후기의 시대상이 잘 반영된 사회 풍자 판소리이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부르거나, 무릎 한 번 치고 지나가는 소리 세상이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강창구
워싱턴 소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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