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지사(可與之死)
2012-01-25 (수) 12:00:00
한국 정치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여야 양당에 여성이 동시에 최고 지도자로 등장한 것이다. ‘여권신장’이란 말이 이제 진부하게 들릴 만큼 진보된 사회이지만 나름의 새로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선출될 날도 멀지 않으리라.
온갖 권한을 한 손에 쥐고 모든 사람의 목숨을 제 마음대로 했던 왕정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사람의 값을 마음대로 매겨서, 너는 양반 너는 상것 등으로 분류하던 신분의 시대도 이미 지나간 지가 오래 됐다. 이제는 모든 권력이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 민주주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에 이른바 지도층을 두 부류로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지배자요, 다른 하나는 지도자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사람 즉 지배자는 많지만 지도자는 찾기가 쉽지가 않다. 이 둘은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같은 점이 있다면 둘 다 지도자란 겉모습을 표방하고 있는 정도랄까?
지배자는 자기 이익과 안일을 도모하고 자신의 뜻과 야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지배자와 독재자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여도 무방하다. 역사상 많은 지배자들이 등장하였고 오늘날도 높은 자리서부터 낮은 자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의 지배자들이 있다. 그들의 수가 많은 시대는 그 만큼 불행한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이와 다르다. 참 지도자는 그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복지와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가운데서 자신의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런 마음도 없으면서 자신을 스스로 지도자 반열에 올리려 하는 것은 가소롭다 아니할 수 없다. 지난 시대에 지도자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몰아갔었는가?
시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표로 뽑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표가 진실로 합당한 사람을 뽑았었냐고 묻는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권력을 사기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표 가진 자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자에게, 백성을 행복하게 다독거려주길 바라는 국민이 있다면 그 생각 자체가 우습기는 마찬가지이다.
따지고 보면 너도 나도 지도자가 되어야겠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이 왕정 시대보다 더 무서울 수가 있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얕보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를 이유 없이 미워하기 쉬운 세상이다. 여기저기서 내 몫을 내놓으라고 목청을 높이고, 네 몫은 크고 내 몫은 작다고 핏대를 올린다. 이렇게 살벌한 세상에선 지도자 되기도 어렵다. 참 지도자를 찾고자하는 바램을 ‘욕심’이라고 표현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목이 마르면 물을 찾고 추우면 따스함을 찾는다. 목마를 때에 시원하게 마시는 냉수와 한 겨울의 따스한 아랫목을 누가 싫어할 것인가? 인간의 마음을 그렇게 하여 주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아무런 부담 없이 사랑하고 우리가 아무런 부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분이, 예수 외에 내 주변에 여러 분 더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분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가여지사, “더불어 죽는다”는 손자병법 2계 2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백성만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먼저 죽기로 맹세할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구절에서 나온 사자성어이다.
한국에서 여성 정치 지도자가 전면에 나섰다. 남성의 무능함으로 인한 결과라고 속단하는 것은 짧은 소견이다. 변화를 바라고 신선함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담겼다고 보고 싶다. 진정 국민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는 모성애와 여성 특유의 공정성이 정치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한 때 지배자가 되려했던 분이 계셨다면 그 마음을 내려놓고, 지도자의 품성으로 변화받아 한인 사회를 행복한 커뮤니티로 이끄시기를 더불어 바랄뿐이다.
안상도
워싱턴 신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