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도산 안창호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2012-01-23 (월)
이광호(NAKS 이사장·한국어정규과목채택추진회 공동회장)
1963년 8월28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워싱턴 기념탑 광장에 모인 20만명의 군중 앞에서 ‘I Have a Dream…’이라는 섬광 같은 연설을 하고 5년 후 암살됐다. 그의 고귀한 희생은 흑인을 위시한 소수민족에게 가혹한 인종차별이 완화되는 계기가 됐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자리에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이 세워졌고 킹 목사가 마치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희망의 돌’이라 명명된 9미터의 대형 전신 석상으로 우뚝 서게 됐다. 그것은 최초의 흑인 기념관이며 링컨 기념관과 제퍼슨 기념관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킹 목사처럼 정의와 평화와 올바름을 위해 평생을 사신 우리 민족의 영웅 도산 안창호 선생을 생각한다. 일본제국의 총칼 앞에서 힘없이 쓰러져가는 대한제국을 위해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독립협회가 강제로 해산된 후 1902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밴쿠버,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를 전전하다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정착하며 4년 동안 과수원에서 일하며 가난과 언어장벽, 문화충격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을 계몽하면서 정치단체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그후 귀국했으나 다시 영국을 거쳐 두 번째로 1911년 9월3일 뉴욕항에 도착하여 1919년까지 8년의 체류동안 흥사단 지부를 설립하여 국내외 젊은이들에게 ‘진리를 사랑하고 실천에 앞장설 것’ ‘정답고 의좋기를 두텁게 할 것’ ‘지·덕·체의 인격을 배양할 것’과 같은 도덕성 회복을 강조했다. 1938년 독립운동가라는 죄수의 신분으로 외롭게 생을 마친지 7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 주류사회와 한인동포사회는 그의 숭고한 뜻을 알리고 후세에 남기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의 서쪽 관문이며 초기 이민사회의 형성지였던 프리웨이를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로 명명하였고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뉴욕 항구인 앨리스 아일랜드 이민박물관 ‘명예의 벽(Wall of Honor)’에 그의 이름이 영구히 새겨졌으며 애틀랜타 민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센터 국가사적지에서는 2012년도 ‘세계 인권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Civil Right Walk of Fame)’ 헌액식도 가졌다. 인권 명예의 전당은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 앞장서고 인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남아공 투투 대주교 등 102명의 이름과 발자국을 새긴
조형물이다. 특히 도산의 조형물은 ‘An Chang Ho’라는 영문과 ‘도산’이라는 한글이 함께 새겨져 한국인의 정체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도산은 평화를 사랑했고 일본의 탄압으로 절망에 빠진 한국인을 일깨우고 희망의 등불을 비추게 했다. 광활한 미 대륙의 서부에서 동부로 이어져 온 그의 정신이 오늘도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굳게 믿고 힘차게 살아가는 한인 217만명의 가슴에 영원한 영웅으로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