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송민정 ㅣ 운수 좋은 사람

2012-01-1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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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복사비 100원을 누군가에게 빌려주어도 쩨쩨한 걸 알지만 꼭 받고 싶었다. 때때로 100원도 없어서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집에 쌀 떨어질까 걱정을 했지만 실제로 쌀이 떨어져서 밥을 굶은 적은 없다. 돈도 없고 쌀도 떨어질 때가 되면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집에 쌀을 가져다 주었다.

대학 2학년이 되었을 때, 선장으로 온세상을 누볐던 아버지처럼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비용을 모으려고 아르바이트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려 할 때 즈음에 영국에서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나는 그 댁의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그 분께서는 숙식을 제공해주시기로 했다. 부족한 돈은 친구 녀석이 무이자로 빌려준다며 턱하니 내주었다. 그 덕에 정말 비행기표 값만 들고 물가 비싼 그 나라에 8개월간 머무를 수가 있었다.


영국에서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프랑스 여행을 갔다. 1불도 안하는 바게뜨 빵으로 하루를 연명하면서도 신나게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오스트라아인 아저씨를 만났다. 그 분과 말이 잘 통해 툴루즈라는 도시를 함께 구경했다. 그 분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점심 한끼와 와인 한잔을 시켜주었다. 갚을 길이 없기에 너무 고마워하자, 나중에 자라서 여유가 있게 되면 너처럼 여행중인 학생들에게 너그럽게 대해주면 된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몇 해 전 타계한 영화배우 폴 뉴먼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참으로 운이 좋아서 그 자리까지 갔을 뿐이라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해주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한 기회를 잡지 못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뿐이라고. 그러므로 운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비록 내가 폴 뉴먼처럼 유명인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때에 나의 손을 잡아준 많은 분들을 만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제 내가 손을 내밀 만큼 여유가 생겼지만, 받기만 한것에 익숙해졌는지 어쨌는지 쩨쩨하게 굴 때가 많다. 기회가 오면 인색하게 굴지 말고 내게 도움을 준 분들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기꺼이 손을 내밀자고 다짐해본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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