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처의 치유”

2012-01-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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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각자 외형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드라마의 구성, 전개, 결론도 모두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드라마의 구성에는 예외 없이 고통과 좌절, 상심과 회한 등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마지막 날 워싱턴포스트지는 2006년 10월2일에 펜실베니아 주의 아미쉬(Amish)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시 조명하며,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했다. 아미쉬는 자동차, 전기, 전화 등 문명의 이기를 피하고 공립학교 교육을 거부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기독교 특수 공동 집단이다.

찰리라는 우유배달부가 학생들에게 총을 쏘아 5명은 죽고, 5명에게는 심한 부상을 입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그의 자살 유서에는 첫 번째 아이를 잃고 하나님한테 몹시 화가 났다고 적혀있었다.


아마도 인생여정에서 자기의 배에서 출생한 자식이 이러한 끔찍한 악역의 주인공이 된 것 만큼 참담하고 죄의식의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건 직후 가족들과 친구들이 찾아와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다시는 아미쉬 사람들의 얼굴을 차마 대할 수 없으리라 생각 했을 때, 그 동네의 아미쉬 헨리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들 부부를 껴안고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라고 하며 한 시간 가까이 그들
을 위로했다.

이 부부는 헨리를 천사라 부르는데, 이 위로를 통해 조금씩 회복이 시작되었고, 그 후 가끔은 마음에 기쁨도 느끼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독실한 기독교인 헨리의 용서와 사랑은 칠흙 같이 어두운 터널에 가는 빛줄기를 비추어 이들을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 후 찰리의 어머니 테리는 지금은 11살이 된, 아들의 총격으로 가장 심한 부상을 입어 혼자 먹지도 서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온몸이 마비된 로자나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음악을 들려주고, 목욕을 시키고, 옷과 침대보를 세탁하고 성경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아들의 끔찍한 범죄를 그 피해자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속죄하고, 그래서 조금씩 치유를 경험하고 있는 테리는 안타깝게 말한다. “분노에 찼던 아들이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기만 하였더라면....”
아들은 하나님을 저주 하였지만 자기는 기도의 능력을 믿었고, 아들은 분노를 죄악으로 표출하였지만 자기는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테리는 말했다. 만일 자기 아들이 집중할 수 있는 성경구절을 가슴에 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빌립보서 4:8-9절의 말씀을 기자에게 소개했다.

테리와 찰리의 모습은 성경의 두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남의 아내를 탐내어 취하고 그 남편까지 전쟁터에서 죽게 했으나 진정한 회개로 새 삶을 살게 된 다윗 왕과, 자기 선생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넘기고 죄의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다가 그 두 사람이다. 인생에 범죄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그 후의 삶은 이처럼 극명하게 다를 수 있다.

이 사건 기사를 다시 읽으며 버지니아텍에서 일어났던 조승희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가해자 조승희 군도, 그 부모와 가족도 모두 피해자이다. 그 가족은 이 사건을 본인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오려내 버리고 싶겠지만, 바라기는 이 가족들도 테리와 같이 사랑의 봉사와 헌신의 삶으로 그 참담한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깜깜한 터널에서 한줄기 빛을, 햇볕 따갑고 건조한 모래사막에서 한줄기 졸졸 흐르는 생명의 물줄기를 찾았으면 좋겠다.


박찬효/ FDA 약품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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