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의 흔적 안에 희망을 이루자

2012-01-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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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신문에서 한 사람의 발을 보았다. 긴 발가락, 보기 흉할 정도로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발. 그 발의 모습 속에서 험한 삶을 살아온 그 누군가의 애환의 이야기를 떠올리려는 참이었다. 아마도 나는 허리가 한껏 굽어진 어느 초라한 시골 아낙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인생을 오래 살아온 촌부의 주름진 이마를 예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하면 눈치 빠른 독자는 나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발의 주인공은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발레리나 김주원이다. 뮤지컬에서 모델까지 대중 문화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활약하는 그는 몸짓으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짓으로 살아간다. “발끝으로 살아가는 자기에게는 도전의 끝은 없다”라고 말한다.
2012년, 또 한 해가 저물고 다른 한 해가 시작된 것이다. 저마다 처한 환경은 다르고 마음가짐도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뭔가 작년보다는 다른, 그것도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작년보다 나은 삶은 과연 무엇일까. 작년보다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것. 매상이 줄지 않는 것. 가족들이 건강한 것. 교회 성도가 줄지 않고 늘어나는 것. 이런 것들이 작년보다 나은 삶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작년보다 나은 삶을 올 해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만나야 할 아픔과 고통을 통째로 잊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올 한 해는 여전히 우리에게 불행하고 암울하고 우울한 그저 그런 다른 해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한 해로 마무리 될 뿐이다. 왜냐하면, 매 순간의 고통과 고난과 인내가 없이 행복은 거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 해를 맞이하며, 독자들에게 희망과 열매로 가득한 한 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할 고통과 힘든 나날들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용기 있는 한 해를 보내자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일 년 365일 살아가면서 아무런 어려움과 실패와 고통의 순간이 없으리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없겠지만, 동시에, 그러한 것들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으리라. 앞에서 말한 상처투성이의 못생긴 발의 주인공 김주원은 2005년 발뒤꿈치 통증 증후군인 족저근막염을 앓았다고 한다. 수많은 무용가와 운동선수들을 절망에 빠뜨리며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그는 2006년 세계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춤을 추는 한, 고통이 계속되지만 무대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춤을 추는 한 통증이 계속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꿈꾸는 발레리나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한 말한다. “나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상처 없는, 만사형통하는, 손대는 비즈니스마다 흑자를 남기는 마음으로 한 해의 문을 열지만, 어디 그렇게 한 해의 문을 닫은 적이 있는가. 1월, 2월 시간이 지나고 살다보면, 어느 사이 새해를 맞이했다는 느낌은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또 다시 넘어지고, 불평하고, 다투고, 남을 상하고 하고, 가족과 자신을 한탄하며, 비관적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쉬운 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의식을 전환하자. 한 해, 12달, 365일이란 날들 속에서 때로는 우리의 마음과 육신에 통증을 가져다주는 일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내 삶이 이 모양 이 꼴이냐고 한탄하며 좌절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희망으로 사는 삶은 허우적대는 몸부림이 없는 삶, 허공을 향하여 허우적대는 삶이 아니라, 용기를 갖고 앞으로 팔을 내딛는 것이라는 것을. 아픔과 상처와 좌절이 치유와 회복과 희망의 순간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발레리나 김주원의 몸은 발레를 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긴 목에 툭 불거진 뼈, 도드라진 팔꿈치.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상체 라인은 내 몸 최고의 콤플렉스였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최고의 무기로 바꾼 발레리나. 올 한 해,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을 가지고 도전하며 희망을 이루어 갔으면 좋겠다.


장보철
워싱턴 침례대, 기독교 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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