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모자
2012-01-12 (목) 12:00:00
나는 기러기들처럼 추위를 탄다. 여름에도 내복을 입어야 하고 밤에는 솜이불을 덮어야 잠을 잘 수 있다. 체중이 백 파운드 안팎으로 그 이상 올라가지 않고, 식욕이 좋아 뭐든지 잘 먹는데도 체중은 제자리다.
내 사정을 단골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 드리니 잘 먹어도 체중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하면서 “그래도 백 파운드는 좀 더 올려보세요”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이 체중 줄이기를 소원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달게 받고 투자도 하는 데 나는 유달리 살이 찌고 싶다. 한 평생 백 파운드 넘어 본적이 없다. 어느 날 언니와 동생 셋이서 모처럼 외식하는 자리에서 “제는 저렇게 잘 먹는 것 다 어디로 보내고 굶은 사람같이 삐쩍 말랐지?” 하는 언니의 말에 동생이 대뜸 “나보다 두 배 먹잖아” 한다.
시집이나 친정 조상들 중 살 찐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무슨 수로 누구를 닮아 살이 찌겠나마는 무작정 살은 찌고 싶고 나이가 드니 마른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진다. 내 뚱보 친구는 절반만 가져가라고 애원하는 데, 나는 주면 받지 하고 웃어댄다.
미국은 여름에도 빌딩 안은 춥다. 가는 곳마다 에어컨을 트니 내 몸은 꽁꽁 얼어버린다. “너무 추워요, 에어컨 좀 줄여주시면 좋겠네요” 하니 “다른 사람은 더워서 풀풀 거리는데 에어컨을 끄면 안 되지요. 자리를 바꾸어 앉아보세요” 한다.
그 말대로 이리 저리 자리를 바꾸어 앉아 봐도 찬바람은 여전히 나를 맴돈다. 마찬가지다.
어느 날, “그 머릿수건 왜 썼지요?” 예배가 끝나고 친교 실로 들어가는데 담임 목사님이 내 머릿수건 쓴 것을 보고 물으신다.
“에어컨이 너무 세서 머리가 아파 썼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느 장로님이 “강대 상위는 더워서 화끈거리지요, 성도님들은 춥다고 하지. 한 번 올라가 보세요, 얼마나 더운지”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피곤할 때 머리 식히려 밖에 나가고, 나는 찬바람 쐬면 편두통이 재발한다.
모처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둘러보니 여성들이 예쁜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내가 마치 세상 저편에 온 것 같이 생소한 풍경이었다. 서울뿐 아니라 시골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도 모자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우리 한국에 모자 공업 바람이 불어온 모양으로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나도 곧 남대문 시장에 가보니 온통 예쁜 모자들로 풍년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 것이나 하나 집어 써보니 내 머리 치수에 딱 맞아 당장 사버렸다. 이것저것 고를 이유가 없었다. 평면으로 생긴 내 얼굴에 모자 쓴 모양이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나, 하나 써보니 우선 따뜻해서 좋고, 나이든 지금 모양보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당장 치료제가 되니 이제 내 작은 머리에 수건은 물러가고 모자의 대단한 역사적 새 출발이 시작되었다. 그 뿐인가. 미국교회 예배시간에 남자는 모자를 벗어야 되고 여자는 모자를 쓰는 것이 예의라고 하니 감사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내가 알기로 지금 한국이 여성모자 공업에서 세계 일류다. 어느 나라 제품보다 월등하다.
미국 상점에서 산 모자를 쓰고는 외출을 못하지만 우리 한국산 모자는 외출용이나 가정용 가릴 것 없이 쓰는 대로 편안하다. 미국 친구가 날 보자, “진, 너는 잘 때도 모자 쓰고 자나?” 한다. “그래! 가끔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모자가 (손으로 짠 망사모자)가 아직 내 머리 위에 올라 앉아 있을 때도 있어.” “히히히, 그럴 줄 알았다.” 나탈리의 웃는 소리다.
한 번은 동생이 방문 왔다가 “언니는 모자 장사를 해도 충분히 하겠다. 웬 모자가 이렇게 많지?” 하며 하나 들고 가버린다.
내 몸이 옷을 입고 사는 거같이 외출 할 때면 내 머리도 모자를 쓰고야 문밖을 나선다.
하순득
워싱턴 수필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