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은 어제의 내일

2012-01-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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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것은 공짜’라는 팝송이 있었다. 청춘남녀의 사랑을 빗댄 말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들도 공짜다. 하나님이 준 햇빛과 공기와 빗물이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이들을 돈 주고 사야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또 하나의 귀중한 공짜 선물을 줬다. 시간이다. 위의 세 가지 선물과 달리 볼 수도, 만질 수도, 호흡할 수도 없는 추상적 개념이다. 햇빛, 공기, 빗물은 남들과 공유하도록 단체로 줬지만 시간은 개인별로 그 분량을 달리 허락했다. 돈 많은 빌 게이츠도 홈리스에게서 시간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은 모세가 “누구시냐”고 묻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했다. 생명이 유한한 피조물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창조주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체’인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영겁에서 유한한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그의 탄생을 기점으로 시간이 BC와 AD로 구분됐다.


예수는 인간으로서는 고작 34년가량 살았다. 구약성경의 무드셀라는 969년, 방
주를 만들어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은 70년 밖에 못 살았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지만 “인생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그나마) 신속하게 날아간다”고 한탄했다.

시간이 아쉬운 세밑에 친지 두 명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둘 다 50대 초반이다. 시간은 촛불 같아서 시시각각 줄어들다가 끝내 꺼진다. 두 사람에겐 비교적 짧은 촛대가 배당됐던 모양이다. 그러나 꼭 긴 촛대가 축복은 아니다. I년을 10년처럼 값지게 사는 사람도, 10년을 1년처럼 허송하는 사람도 많다.

황진이는 “청산리 벽계수야 쉬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라고 노래했다. 스노퀄미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듯 시간도 한번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낮 12시와 내일 낮 12시는 전혀 똑같지 않다. 그 사이에 촛대가 24시간 분량만큼 짧아진다.

201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은 토요일이었다. 달력의 날자가 맨 밑줄 끝까지 꽉 차서인지 마치 금년 365일을 에누리 없이 살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실은 2011년 1월1일 역시 토요일이었다. 그 때는 달력상으로 일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엿새가 텅 비어 손해 보는 새해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었다.

2011년에서 2012년으로 1년이 바뀌었다. 하지만 사실은 하루 상관이다. 사람들이 12월31일 밤 제야 폭죽쇼를 보며 ‘송구영신’의 감회에 젖었지만 시간은 그런 감회 없이 꾸준히 흐른다. 하루, 한 주일, 한 달, 한 해의 매듭은 사람들이 구분한 것일 뿐 창조주에겐 항상 오늘이 내일의 어제에 불과하다.

하루 25시간을 사는 요즘 세상에 시간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존 정글의 ‘아몬다와’ 토인부족이다. 이들의 말에는 시, 일, 월, 년의 단어가 없다. 시계도, 달력도 없고 나이도 모른다.

이 부족을 발견한 영국의 크리스 시나 교수는 이들이 시간의 사슬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이라며 부러워했다. 일 년 열두 달을 바쁘게 사는 한인들에겐 시간이 돈보다 귀한 재산이며 생명 자체다. 새해 1월 달력도 첫 일요일부터 꽉 차 에누리 없이 출발했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비즈니스 경영을 잘해야 하듯 인생에 성공하려면 시간경영을 잘해야 한다. 새해엔 우리 모두 ‘코리언타임’을 몰아내자. 남의 ‘생명’을 축내지 말자.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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