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한경쟁

2011-12-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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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미 / 주부

한국에 사는 조카가 놀러왔다. 겨울 방학을 맞이해 고모 집에 한 달 조금 넘게 있다 간다고 했다. 조카는 참 성실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가져온 숙제를 날마다 꼬박꼬박하고 심심하니 TV를 보라고 해도 숙제부터 해야 한다고 안 본다.
도대체 올케가 어떤 재주를 부렸기에 이리도 잘 크고 있단 말인가. 거기다 조카는 다재다능하기까지 하다. 축구 야구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고 수영은 경기도 대표로 나가 메달도 받았다고 하니 실력이 아주 대단한 듯하다. 심지어 영어도 잘 한다. 게다가 알고 있는 상식도 많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냐고 물어보니 그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배운 것이란다. 요새 학원에선 상식도 가르쳐 주냐고 묻자 상식이 아니라 역사 학원이 있다고 했다.

학원 스케줄을 묻자 수학, 영어, 과학은 기본이고 축구, 야구, 수영, 피아노, 미술과 역사도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거기다 구몬 선생님도 집으로 온다고 했다. 듣기조차도 숨이 찼다.


그래서인지 조카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아무리 물어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이유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기 때문이란다. 이제 곧 4학년이 되는 이 어린 아이가 벌써 어떻게 노는지를 잊어버리다니 가슴이 막막해진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조카를 통해 더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됐다. 착하고 다재다능한 우리 조카가 한국의 무한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그저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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