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창올림픽서 한인 2세들 메달 따는 게 꿈”

2011-12-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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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훈. 기억력이 웬만한 사람이라면 벌써 “아, 옛날의 쇼트트랙 스타!”란 말이 먼저 나올 것이다. 90년대 한국 쇼트트랙 계의 세계 정복을 이끌었던 슈퍼스타 채지훈 선수가 워싱턴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후학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길이다. 메릴랜드의 리딩 에지 스피드 스케이팅 클럽에서 헤드 코치로 활동 중인 채지훈 씨를 만나 근황과 그의 꿈을 들어보았다.


-언제 미국에 왔나?
연세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스포츠 분야의 공부를 더 하기 위해 1999년 처음 유타 주로 왔다. 유학 장소를 솔트레이크 시티로 정한 건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라 나름의 기대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쇼트트랙을 연습할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이 안 돼 있었다. 영어공부만 하다 다시 귀국했다.
-90년대 명성을 날리다 선수생활을 접은 후 한동안 잊혀 졌는데 그동안 뭘 하며 지냈나?
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계주 5천 미터 은메달을 따고 은퇴했다.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다. 5살 때부터 20년을 얼음판에서 살았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미국에 잠시 왔다 귀국해 연세대에서 2003년부터 박사학위를 공부해 사회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미국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로 1년간 활동했다. 콜로라도의 스프링스에서다.
-다시 워싱턴으로 온 특별한 이유는 있나?
2009년 다시 도미했다. 이번에는 아예 지도자로 미국에 정착하려는 각오가 있었다. 서부에 줄곧 있었는데 피겨 스케이팅에 비해 쇼트트랙 분야는 척박했다. 워싱턴은 여러 팀들이 경쟁적으로 활동하면서 쇼트트랙이 활성화된 지역이라 들었다. 정현숙 리딩에지클럽 회장과 알게 되면서 마침 김윤미 코치가 귀국하게 돼 올 8월에 오게 됐다.
-리딩에지 클럽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어시스턴트 코치 2명과 함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다섯 살부터 70대까지 학생층이 다양하다. 주로 중고생이며 90%가 한인 학생들이다. 지도한 지가 얼마 안됐지만 지금은 기본자세 만들기와 체력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한인학생들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 선수들이 쇼트트랙을 잘 타는 건 어려서부터 정확한 자세를 배워서다. 미국은 공부 우선이며 운동은 2순위 같은 분위기다. 이곳 학생들은 학교 수업시간이 끝나고 운동하며 대부분 공부를 잘 한다.
한인 2세들은 기본 파워는 좋지만 기술력은 부족하다. 한국은 지역에서 잘 하면 바로 서울로 올라오지만 미국은 너무 넓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계속 살며 운동을 해야 하는 핸디캡이 있다. 하지만 잘 가르치면 좋은 선수들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아이스 링크 시설 등 연습 환경은 어떤가?
한국의 시설이 좀더 나은 편이다. 슈즈 등 장비도 그렇다. 한국은 아이스 링크에서 연습시 쇼트트랙 종목이 우선이나 미국은 아이스하키가 우선이다. 아이스하키가 연습한 다음 우리가 하니 빙판의 질이 나빠진 상태에서 연습을 하게 된다.
-역시 쇼트트랙 스타선수였던 김동성 씨가 워싱턴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곤욕을 치렀다. 한국적 지도방식이 미국에서 받아들여지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배우던 시절에는 좀 맞아가며 배운 점도 있다. 때리고 기합 주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은 지금 한국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팀과의 경쟁이 심하다 보니까 안 해도 되는 훈련을 하는 등 불합리한 측면도 있다.
코치진이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나는 ‘이걸 하라’는 식보다는 ‘이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2006년부터 미 대표팀 코치로 미국 선수들을 지도했는데 어려움이나 갈등은 없었나?
아시아에서 새 코치가 왔다니 선수들이 ‘오냐, 한번 가르쳐 보려면 해봐라’는 식의 태도였다. 내가 영어가 미숙해 나만의 사인을 주는 방식으로 지도를 했다. 한국식 훈련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에 별도의 한국식 프로그램을 만들어 희망자에 한해 자발적으로 참여케 했다. 한 시즌을 지도하니 희망이 보였다. 안톤 오노와 현 미 대표선수인 조단 말론 등이 그 당시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다. 이들이 잘 따라주고 좋은 성적을 내니 미국 선수들을 가르치는 자신감을 얻었다. 뿌듯하고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다.
-좋은 빙상 선수가 되려면 어떤 체격이나 성격이 필요한가?
누구나 꾸준히 하면 잘 탈 수 있다. 나도 타고난 운동소질이 없는 편이다. 다만 끈기와 승부욕은 있어야 한다. 쇼트트랙은 코너를 한손으로 대며 하는 운동이기에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TV를 보면 선수들이 얼음을 그냥 지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짧은 시간에 다리로 버텨내야 한다. 큰 체격이나 장신보다는 오히려 폐활량과 근력이 더 요구된다. 그래서 20세에서 25세가 전성기다.
-지도자로서 어떤 포부를 갖고 있나?
2018년 우리의 조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한인 2세 선수들을 잘 육성해 평창대회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해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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