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마다 기다려지는 성탄카드

2011-12-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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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기다려지는 카드가 있다. 캔자스 주의 자그만 도시에 사는 한 교수 부부가 보내는 성탄 카드다. 그들이 보내는 카드는 홀마크나 다른 시중에서 파는 카드를 사서 몇 마디 인사말을 써 보내는 그런 카드가 아니다.

손수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리고 쓰고 해서 보내는 카드다. 우선 그 카드 맨 앞면을 보면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홀리 나무 잎과 산타 모자 같은 그림을 꼴라쥬 기법으로 장식한 가족사진이 먼저 인사를 한다.

그 사진 속에서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카드를 펴면 왼 편 속지를 4등분했는데 가족 각자가 개인별로 소식을 전한다. 우선 쓰는 사람의 얼굴을 커리커처 한 것이 재미있고 나름대로 한해를 보내고 또 성탄을 맞는 감회가 개성 있게 담겨 있다.


그리고 오른 편 속지에는 한 해 동안의 가족 생활사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다. 그건 부인의 글씨다. 스페이스가 모자라면 한 두 페이지가 덧붙여진다.

몇 해 전의 카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부인이 일찍 일어나 남편을 위해 아침밥을 차려 놓고 먼저 학교로 출근해서 남편이 일어나야 할 시간에 전화를 걸어 깨운다. 남편은 전날 학교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있었다.

작년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그 도시와 인근에 사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수소문하여 70여명을 초청해서 잡채와 김밥 갈비 같은 한식을 손수 만들어 대접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등등 이런 성탄 카드를 통해 듣는 그분들의 소식을 읽으면서 나는 즐거움과 감동을 맞본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갓 태어난 딸이 이미 대학 졸업반이 됐고 아들이 12학년이 됐다는 소식도 지난해 성탄 카드 소식이었다.

나는 이들로부터 오래 동안 성탄 카드를 받으면서, 내외가 모두 교수로 성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부부로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도 소상하게 알게 됐고 또 감동을 받아왔다.

그리고 처음 미국에 이민을 와서 고국의 가족에게 보내던 단순한 성탄 카드 소식이 이제는 20년이 넘는 연륜이 쌓이면서 온 가족이 참여해서 엮어가는 장편 홈드라마가 되고 있으니 이 또한 흥미진진한 일이다.

이제는 모두에게 지나간 추억이 돼 버렸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탄절이나 연말이 오면 모두들 카드 쓰기에 바빴고 집집마다 받은 카드들을 장식장이나 탁자위에 가득 진열해 놓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e카드로 대체대고 그나마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있다 해도 거래처에서 보내는 의례적인 카드나 받아 볼 따름이다.

매일 우편함을 뒤져 봐도 고지서나 광고지로 가득 차는 요즘, 온 가족이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내는 한 가족 카드를 받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년 또 그 이후 그들로부터 받는 카드를 통해 그 두 분의 멋진 삶과 두 자녀의 성장을 지켜보려는 기대에 차 있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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